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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스토리

[팀장으로 산다는건] #5 팀원을 프로로 만드는 첫걸음

[팀장으로 산다는건] #5 팀원을 '프로'로 만드는 첫걸음 


1997년 1월, 주력 계열사 한보철강 부도로 당시 재계 순위 14위였던 한보그룹이 무너졌습니다. 무리한 차입과 부정대출이 원인이었습니다. 이후 굵직한 기업들이 잇따라 도산해 한보 부도는 IMF 사태의 전조로 꼽힙니다. 굴지의 대기업이 무너진 것보다 더 충격적인 건 정경유착과 비리였죠. 이와 관련해 4월에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고(故) 정태수 당시 한보그룹 회장은 이 자리에서 길이 남을 '명언'을 남겨 화제를 모았습니다.  

"자금이라는 것은 주인인 내가 알지, 머슴이 어떻게 압니까?"


출처 동아일보  

 

한 의원이 추가 자금 지원이 있었어도 한보철강이 두달 밖에 버티지 못했을 거란 한보 임원의 검찰 진술 내용을 밝히자 이 같이 반응한 것입니다. 사장은 주인, 직원은 머슴이라 사고방식이죠. 23년 전 한국은 이런 생각을 노골적으로 표현해도 되는 시절이었습니다. 

 

주인의식을 가져라!

사회생활을 하며 상사에게 가장 많이 들어본 말이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직장인들이 자조적 농담으로 '월급노예'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회사는 늘 주인처럼 일하라고 합니다. 상사의 꾸지람 속에도, 사장님의 훈시나 신년사에도 이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기업 인재상이나 가치체계에 주인의식이 한 자리를 차지하는 곳들도 있습니다. 

 

기업들도 주인의식을 가진 직원을 무척 바라고 있습니다. 2018년 한국상공회의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100대 기업의 인재상에서 주인의식이 5위를 차지했습니다. 

 


 

자주 듣다보니 저 역시 자주 말하게 되더군요. 팀원들에게 뭇미하게 이런 말들을 했던 제 과거를 먼저 고백합니다. 또한 제가 팀원일 때 저에게 주인의식을 남발하던 팀장님들을 떠올려봅니다. 그들도 정확한 의미를 알고 말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뉘앙스 상 "일 좀 빠릿빠릿하게 해라" "알아서 찾아서 해" 정도였겠죠.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주인의식과 무슨 관계가 있었을까 싶네요. 

 

여기서 생기는 의문은 '주인이 아닌데 어떻게 직원이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냐'는 것이죠. 강아지에게 넌 고양이니 앞으로 '야옹'거리도록 하라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면 너무 나간 얘기일까요? 

 

직원의 주인의식을 함양하기 위해 권고되는 사항은 아래와 같습니다. 

 

- 기업정보를 최대한 공개하자 

- 제안을 장려하고 의사결정 참여를 보장하자 

- 성과가 나면 공정하게 배분하자 

 

불행히도 이러한 원칙을 따르는 회사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실행된다 하더라도 직원이 주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관리자가 얘기하는 주인의식은 '열심히 일하는 똘똘한 머슴'일 뿐일 테니까요. 따라서 주인의식이 허상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솔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없어요. 없다구요.' 출처 더본 홈페이지 동영상

 

직원은 주인이 아니다

회사-직원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입사할 때 직원은 근로계약서에 서명을 합니다. 이 사실에 비추어보면 회사-직원은 '계약 관계'라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서구 사회와 비교해 우리나라는 계약 개념이 상대적으로 철저하지 못합니다. 계약서대로 하자고 따지면 '쫀쫀한 인간' 취급을 당하기도 하죠.  

 

회사와의 계약은 기본적으로 노동-임금의 교환입니다. 직원은 노동시간을 제공하고 급여를 받습니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 계약을 맺고 교환가치를 나누는 평등한 관계의 결과물이죠.이런 까닭에 저는 회사와 직원의 관계를 '파트너십'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파트너십이란 쌍방이 각자의 의무를 다하는 결과로 서로의 권리를 행사하는 관계이죠. 이러한 맥락에서 회사는 더욱 수평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아쉽게도 현재 대다수 기업의 사업부제 조직은 1930년대 미국에서 형성된 과거의 유물이라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주인의식 아닌 '프로페셔널리즘'

계약에 기초한 파트너십 관계에서 직원들 개개인에게 요구되는 의식은 프로페셔널리즘이라고 봅니다. 파트너답게 일하고, 성과를 당당하게 가져가는 게 프로정신이죠. 회사를 대의로 보고 소의인 개인을 굴종시키는 주인의식과 다른 개념입니다. 

 

주인의식은 조직이 강요하고 강제하는 관점이라면, 프로정신은 보다 자발적이고 참여적입니다. 팀장이 팀원을 질책할 때도 후자를 택해야 더 효과적입니다. 회사에서 벗어난 개개인의 관점을 건드리는 시도이기 때문입니다.  

 


  

팀과 프로정신

예전에 안타까운 팀원 하나가 있었습니다. 발전 가능성은 있는데 성과나 실력 향상 정도가 그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여러 차례 면담한 끝에 원인에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입사 동기들과 격차가 벌어지고 있어 불안하다고 하더군요. 불안이 분발의 촉매제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으련만, 의지가 약한 상태에서 노력한 몇 가지 일들이 실패로 귀결되자 작은 실패들이 쌓여 무기력증에 빠져 버린 것입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여러 조언을 해주었는데, 가장 효과가 있었던 건 "남을 생각하지 말고 자신을 먼저 생각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남과의 비교에 휘둘리는 사람은 애초 자신의 목표가 없거나 불분명해서 그렇지요. 본인의 목표를 세우는 것이 우선이 돼야 합니다. 그래야 비교가 좋은 동기 부여의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입사 동기들은 네 인생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야. 옆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뭐가 중요하니? 정작 문제는 네 목표가 없는 거야. 그러니 길이 안 보이는 거고, 당연히 옆이나 두리번거리겠지." 

 

그 직원은 아쉽게도 다른 부서로 전속되었습니다. 변화하는 모습을 보진 못했지만 일년 후 감사 인사를 전해왔습니다. 저의 조언이 도움이 됐다면서요. 지금은 팀장으로 승진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 필자 김진영 (jykim.2ndlife@gmail.com)

■ 정리 인터비즈 박은애 

 

대학에서 문학을, 대학원에선 경영학을 전공했다. 22년 동안 대기업 중견기업 벤처 공공기관 등을 거치며 주전공인 전략기획 외에 마케팅 영업 구매 인사 등 다양한 업무를 경험했다. 최근엔 개도국 전자정부 컨설팅부서에서 프로그램 매니저를 맡고 있다. '성장과 발전은 끝이 없다'를 신조로 삼고 있으며, 함께 성장하기 위해 조직에 학습조직을 만들고 사내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최근 관심사는 조직 변화와 새로운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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