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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매거진 조직문화

기업이 ‘사망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유 [더플랩]

2022-11-11

소통하는 리더는 끊임없이 묻습니다. 지금 우리 회사는 무엇이 부족하며, 직원의 마음을 오래도록 붙들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를. 설문조사를 꾸준히 실시하며, 틈날 때마다 직원 개개인을 상대로 1대1 면담을 진행하고, 속내를 허심탄회하게 풀어놓을 수 있는 회식 자리도 자주 마련해 줍니다. 오가는 목소리 속에서 다양한 의견과 건의사항이 들려 오며, 리더는 이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심지어 이해가 잘 가지 않거나 영 탐탁지 않은 요구라 할지라도요.

하지만 리더가 이토록 온 힘을 다해 노력하는데도, 여전히 우수 자원은 입사를 꺼리며, 힘겹게 영입한 인재마저 쉽사리 사표를 던지고 떠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우물을 아주 엉뚱한 방향으로 판 것 같진 않습니다. 사내 복지 수준과 근무 환경은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고, 재직 중인 직원 대부분도 분명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음을 인정하니까요. 그런데도 퇴사율은 도통 꺾일 눈치가 없는 데다 취준생들의 선호 또한 크게 달라지질 않습니다. 무슨 까닭일까요.

잠시 옛날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지난 1987년 뉴욕주에서 일하던 수의사 W. O. Whitney와 C. J. Mehlhaff가 미국 수의학협회 저널(Journal of the American Veterinary Medical Association)에 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5개월간 고양이 132마리를 진찰한 결과 6층 이하에서 떨어진 고양이보다 7층 이상에서 추락한 고양이가 부상이 덜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는, ‘고양이는 오히려 높은 곳에서 떨어졌을 때 안전할 확률이 높다’는 소문의 근원인 문헌이죠.

/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박이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은 편입니다. 세간에 떠도는 이야기의 근원을 밝히고 진위를 판명하는 취재를 전문으로 하는 미국 신문 스트레이트 도프(The Straight Dope)는, 1996년 ‘Do cats always land unharmed on their feet, no matter how far they fall?’ 칼럼에서 “기존엔 고양이의 추락 지점이 고층일수록 몸을 활짝 펼쳐 공기 저항을 키울 시간적 여유가 많아지므로 안전 착지 확률이 증가한다고 추측했는데, 다른 방식으로도 이 통계는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스트레이트 도프는 “사실 두 수의사의 연구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바로 ‘병원에 온 고양이’만을 들여다봤다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이미 사망한 고양이’는 아예 연구 대상에서 빠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명백히 숨을 거둔 상태라도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자신이 받은 태아 한정)만이 사망 선고를 내릴 수 있지만, 동물은 딱히 선고 절차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떠난 것이 분명해지면 즉시 장례를 치를 수 있고, 자연히 수의사의 연구 통계에도 잡힐 도리가 없게 됩니다. 스트레이트 도프는 “아무래도 7층 이상에서 떨어진 고양이보다는 6층 이하에서 추락한 고양이 쪽이, 병원에 이송될 때까지 생명 유지가 가능할 정도로만 상처를 입을 확률이 높지 않겠느냐”며 “연구자들은 ‘보고되지 않은 사망자’를 잊은 바람에 7층 이상에서 떨어지면 생존율은 더 낮아진다는 점을 간과해 버렸다”고 설명했습니다. 생존자 사례에만 집중하다 사망자들이 주는 교훈을 무시하는, ‘생존 편향(Survivorship bias)’ 오류를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생존 편향 관련해 더욱 유명한 사례를 하나 더 들어 보겠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미 해군은 출격 후 귀환한 전투기 기체에 남은 적탄 흔적을 조사하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는 가장 취약하고 위험한 곳을 파악해 장갑을 덧대려는 조치였습니다. 물론 비행기 전체 장갑을 고루 강화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하면 비행기가 지나치게 무거워져 이륙에 필요한 거리가 늘어나거나 연료 소모량 증가로 작전 반경이 좁아지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어 효과가 가장 좋은 부위를 신중히 선택할 필요가 있었죠. 조사 결과 피탄 수 평균은 엔진 부위가 1.11발, 동체가 1.73발, 연료계가 1.55발, 나머지 부분은 1.8발이었습니다. 해군 장성들은 피탄 수가 많은 동체 부위가 적의 공격에 취약한 지점이라 판단하고 보강을 결심했습니다.

전투기 기체 피탄 부위./Martin Grandjean, McGeddon, Cameron Moll 공동작업

그러나 전쟁 지원 조직인 통계연구그룹(SRG)에서 일하던 아브라함 왈드 컬럼비아대 통계학과 교수가 이에 반대하며, 오히려 총알을 맞은 횟수가 가장 적은 엔진 부위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왈드 교수는 “총탄 구멍이 남은 곳은 사실 공격을 받아도 기지에 돌아오는 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안정성이 높은 부위임을 암시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고양이 사례와 마찬가지로, 살아남은 표본만을 들여다본 탓에 허다한 사망자에게 치명상을 입힌 요인은 제대로 읽지 못한 생존 편향의 오류를 저지른 것이죠.

기업 또한 비슷한 실수를 범할 수 있습니다. 물론 죽지 못해 별수 없이 다니는 직원도 전혀 없지야 않겠지만, 아무튼 재직자 대부분은 몸담은 회사의 연봉, 워라밸, 회사 입지, 기업 이미지 등이 이래저래 받아들일 만한 수준이라 판단해 출근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바깥에서는 그 정도 연봉이면, 혹은 그런 워라밸이면 아예 다닐 곳이 못 된다 말할지도 모르는데도 말이죠. 즉, 이미 어느 정도 타협에 성공해 포섭된 ‘생존자’만을 들여다보다, 여타 구직자들을 튕겨내 버린 진짜 문제를 놓치는 생존 편향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넷플릭스

물론 이미 생존 편향의 문제를 인지하고 나름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기업 또한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넷플릭스를 들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부검 메일(Postmortem email)’이라는 독특한 제도를 운용하는데요. 우리나라에는 대개 떠나는 직원이 회사에 남기는 메시지로 잘못 알려졌지만, 사실은 해고당한 직원을 대상으로 그의 상사가 HR 파트와 논의해 작성하고 사내에 배포하는 분석 보고서에 가까운 문서입니다. 왜 그가 해고 통지를 받게 됐는지를 투명하게 공개해 회사 내에 잘못된 소문이 퍼지는 상황을 막는 동시에, 이를 반면교사로 해 같은 상황이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자는 취지라 합니다. 필요에 따라선 해당 해고 상황을 의제로 회의를 개최할 수도 있다 합니다. 조직에 잘 적응하고 타협한 ‘생존자’가 아닌, 축출당하는 ‘사망자’를 부검해 생존 편향 극복을 시도하는 셈이죠. 지난해 2월 진행된 조사에 따르면 넷플릭스 직원 중 97%가 해고자를 다룬 ‘부검 메일’을 받은 경험이 있으며, 75%는 이러한 문화가 넷플릭스에 더 나은 문화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응답했다 합니다.

/사람인 HR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