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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매거진 인사기획

한국 양궁을 통해 살펴보는 기업 인재관리 전략

2018-04-01




한국 양궁을 통해 살펴보는 기업 인재관리 전략

 

이현아 HR Insight 기자

 

 

우리나라 양궁이 세계 최고가 된 뒤에는 대한양궁협회의 적극적인 인재관리 노력이 있었다. 인재 양성을 위해 맞춤형 코치를 양성하고 급변하는 세계 양궁 환경에 맞춰 국가대표 선발방식 및 훈련방식을 발 빠르게 바꿨다. 실력에 기반해 공정하게 인재를 선발하고 평가하는 것 또한 우리나라 양궁이 가진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다.

 

인재 양성을 위한 맞춤형 코치 양성

교육에 의무교육과정이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 양궁에도 맞춤형 코치 양성 과정이 있다. 양궁에 이러한 코치 양성 과정이 도입된 것은 연속성 있는 교육을 통해 혼란 없이 인재를 양성하기 위함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실업팀으로 옮길 때마다 코치가 계속 바뀌기 때문에 인재양성 과정을 일원화하기 전에는 각각의 코치에게서 각기 다른 코칭 방법으로 기술을 전수받아 보니 선수들이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대한양궁협회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고자 우리나라 코치들에게 무상으로 집체교육을 실시하는 '양궁 지도자 연수' 과정을 마련했다. 이 연수 과정은 1급, 2급, 3급으로 나눠지며 연수에 참여한 코치들에게는 각 급수별로 초등-중-고등-실업팀 선수-국가대표 선수에게 가르쳐야 하는 필수 훈련 요소를 가르친다. 이를테면 3급 과정에서는 초등학생 양궁선수들이 배워야 할 기초적인 부분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2급 과정에서는 중-고등학교 양궁선수들이 배워야 할 기술적인 부분을 알려주고, 1급 과정에서는 기술적 완성, 장비 관리 방법, 선수 심리 등 심화과정을 가르쳐 국가대표 선수를 관리할 수 있을 정도의 고급 역량을 갖추도록 하는 식이다. 이러한 연수는 1년에 2~3회 가량 진행되며 연수에 참여한 코치들은 일정 연차가 되면 상위 급수의 강의를 수료할 자격이 생기게 된다.

 

연수에서는 기술적인 부분과 실습뿐만 아니라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방법, 이를테면 선수가 경기장에서 긴장해서 활을 잘 못 쏠 때는 어떤 대처를 해야 할까 등의 주제로 분과토의를 실시, 리포트를 만들고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도록 한다. 이에 대해서는 외부 체육기관 연구원, 체육 관련 박사학위 소지자 등 전문가들이 과학적이고 이론적인 부분을 평가해 우수 팀을 선정한다. 또한 급수와 상관없이 상위 등급이나 하위 등급 강의도 언제든지 들을 수 있도록 해 하위 등급에서 배우는 기초적인 부분을 되새기고 싶은 코치나 궁금증이나 동기 부여를 위해 상위등급 연수를 듣고자 하는 코치들이 교육을 청강할 수 있도록 했다.

 

급변하는 세계 양궁 환경

변화하는 기업 환경만큼이나 세계 양궁 환경도 급격하게 변화해왔다.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양궁 종목에 출전한 1984년 LA올림픽을 시작으로 양궁 경기방식은 큰 부분이 8번, 작은 부분이 4번 바뀌었다. 올림픽이 4년에 한 번 개최되고 우리나라가 총 9번 올림픽에 출전한 점을 감안하면 매 대회마다 1가지 이상의 경기방식이 바뀐 것이다.

가장 큰 변화는 선수가 대회에서 쏘는 화살의 발수다. 초창기 출전한 대회에서는 288발을 쐈다면 어느 순간 144발로 줄고, 그 다음 번에는 24발로, 나중에는 12발까지 줄었다. 쏘는 화살수가 줄어들면 훈련하기 편해질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288발을 쏠 때는 선수가 컨디션, 바람, 날씨 등의 흐름에 따라 활을 쏠 수 있고 실력만 갖춘다면 그 흐름 속에서 충분히 역량을 발휘 할 수 있었기에 혹시 5~6번 정도 사소한 실수를 해도 승패에 큰 영향이 없었다. 그러나 12발로 활수가 줄어들면 단 한 발의 실수가 승패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고 만회할 길이 없기 때문에 선수들의 집중력을 더 강화해야 한다.

 

이에 더해 최근에 또 한 번 크게 경기방식이 바뀌었다. '세트제' 경기방식이 도입돼 3발씩 5세트를 쏘고 있다. 선수가 얼마나 잘 쐈는지 상관없이 상대 선수보다 잘 쏴서 이기면 2점, 지면 0점을 받는 거다. 연장전의 경우 한 발만 쏴서 승패를 겨루고 정중앙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꽂힌 선수가 이기도록 경기 방식을 바꿨다. 안정된 실력을 바탕으로 경기에서 승리를 거둬왔던 우리나라 양궁이었기에 실력 이외에 '운'이라는 변수가 크게 작용돼 승패가 갈릴 수 있는 세트제 경기방식은 치명적이었다. 실제로 경기방식이 막 세트제로 바뀐 직후 치렀던 2012년 런던올림픽 때는 한국 여자양궁 2관왕의 맥이 끊길지도 모르겠다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느끼기도 했다.

 

국가대표 선발방식의 변화

이렇게 급변하는 세계 양궁 환경 속에서도 우리나라 양궁이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최고로 살아남은 것은 바뀐 경기방식에 맞는 인재의 요건을 빠르게 확립하고 이에 발맞춘 인재선정 방식을 적시에 도입한 덕분이었다.

 

경기 방식이 바뀌면서 한국 양궁이 필요로 하는 선수의 역량도 달라졌다. 288발의 화살을 쏠 때는 각 거리마다 흐름을 타면서 안정되게 쏘는 선수가 필요했다면 세트제 경기방식에서는 활을 쏠 때 순간적인 집중력을 발휘하고 활을 내려놓은 후에는 빠르게 몸을 이완시킬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활을 제대로 쏠 수 없고 빠르게 몸을 이완시키지 않으면 경기 내내 피로가 쌓여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훈련 과정도 전부 바꿨다. 특정 선수와 대결을 해 이기는 방식으로 올림픽 경기 방식이 바뀌었으므로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에도 토너먼트 방식을 도입했다. 또한 단순히 이기고 지는 것뿐만 아니라 이긴 선수가 몇 점으로 상대 선수를 이겼는지까지 세밀하게 계산해 선발에 반영토록 했다. A선수는 B선수에 강하고 C선수에 약할 수 있으니 어느 선수와 만나든 기복 없이 잘 쏘는 선수를 선발하기 위해 리그전도 실시하고 있다. 동점이 나오면 연장전을 치러 마지막 한 발로 승패가 결정되므로 누가 한 발 승부에 강한지도 확인한다. 즉, 종합기록 평가, 토너먼트 평가, 최종 10명 대상 리그전 평가, 한 발 평가의 총 4단계를 거쳐 선발전을 치르는 것이다.

 

국가대표 훈련방식의 변화

평가방식 뿐만 아니라 훈련방식도 유기적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경기방식이 1가지 바뀌면 훈련방식은 30여 가지가 바뀐다. 288발의 화살을 쏠 때와 3발의 화살을 쏠 때 선수들이 갖춰야 할 체력조건, 심리적 요인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체력훈련, 멘탈 관리, 경기 운영능력 유지를 위한 훈련들이 전부 바뀌어야 한다.

 

이를 위해 코치들은 선수들의 훈련을 보거나 다른 코치, 선수들과 대화하며 새로운 훈련 과정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 태릉선수촌 내에 있는 한국체육과학연구원에 의견을 제시한다. 그러면 연구원에서는 새로운 훈련과정을 수행할 때 움직이는 근육, 몸의 중심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등을 기계로 측정해 해당 훈련이 원하는 부분의 근력을 강화하는데 도움을 주는지 확인한다. 멘탈 훈련과 관련해서는 뇌파측정을 해 과학적 근거가 있는 훈련인지에 대해 검토한 후 효과가 입증되면 훈련과정에 도입한다.

 

이러한 훈련과정의 변화는 유기적으로 끊임없이 이뤄져야 한다. 바뀐 경기방식이 불과 올림픽 개최 1~2년 전 공지되기 때문에 공지된 후부터 바뀐 경기방식에 맞춰 훈련하면 타국 선수들에 비해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아선수권대회 등에 동행하는 양궁 코치, 대한양궁협회 관계자들은 타국 코치들과의 대화, 경기방식 결정에 일정 부분 권한을 가진 다음 올림픽 개최지 관계자들의 발언 등 정보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변화할 경기방식을 추론하고 이를 시시각각 훈련 방식에 반영한다.

 

공정한 인재 선정과 평가

 얼마 전 세계양궁연맹은 '디펜딩 챔피언인 기보배 선수와 김윤희 선수가 한국 국가대표 엔트리에서 제외됐다'는 소식을 연맹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올리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디펜딩 챔피언'은 전년도 우승자, 타이틀을 방어해야 하는 강력한 우승후보를 의미한다. 실제로 기보배 선수는 2012년 런던올림픽 2관왕,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과 개인전 동메달을 딴 명실 공히 한국 양궁 여제이고, 김윤희 선수 또한 지난 2015년 코펜하겐 세계 양궁 선수권 대회 컴파운드 부문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딴 최고의 기량을 갖춘 선수다. 기보배 선수는 이번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8명을 뽑는 1차와 4명을 뽑는 2차 예선을 통과했으나 4명 중 3명을 뽑는 최종 관문에서 고배를 마셨다. 기계 활을 쏘는 컴파운드 부문에 참가한 김윤희 역시 4위를 기록해 3명을 뽑는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세계는 두 양궁 여제의 탈락에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역시 한국 양궁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또한 올림픽 보다 치열한 한국 양궁의 내부경쟁과 선수 선발 과정의 공정성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국양궁협회는 한국 양궁이 추구해야 할 최대 가치를 '공정성'과 '투명한 경쟁'에 두고 있다. 이를 위해 모든 국내 대회를 대내외로 오픈하고 선발전 과정에서 부정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러한 노력은 양궁 국가대표 선발방식에 잘 드러나 있다.

 

양궁 선수 랭킹은 1년 동안 총 10번의 국내대회를 치러 가장 활을 잘 쏜 기록에 의해 결정된다. 국가대표 선수 선발전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이 랭킹의 120등 안에 들어야 한다. 랭킹에 따라 선정된 남녀 양궁 선수들은 앞서 말했듯 48강, 32강, 24강, 16강, 12강, 8강, 4강, 3강까지의 치열한 선발전 대결을 통해 국가대표로 선정된다. 그런데 이 과정을 점수가 누적돼는 방식으로 하면 소위 말하는 '짬짜미'가 이뤄질 수 있다. 초반 경기에서 1등을 많이 한 선수는 후반부에는 선발전 1~2번쯤 참여하지 않아도 국가대표로 선발될 확률이 높아진다. 이렇게 되면 이 선수는 리그전에서 특정 선수에게는 져 주고, 토너먼트에서 특정 선수를 이기는 식으로 아래 등수 선수들의 선발에 부적절하게 관여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한국 양궁은 매 경기마다 점수를 초기화한다. 48강에서 32강으로 올라가면 48강 선발 때 쌓아놓은 점수는 사라진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누적 점수가 없기 때문에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매 경기마다 합류해 있어야 한다. 아무리 기량이 뛰어난 선수라도 자기관리가 잘 되지 않거나 순간의 기복이 있어 실수하게 되면 순식간에 탈락하게 된다. 이 때문에 선수들은 꾸준한 기량을 유지하고 매 경기마다 우수한 성과를 내기 위해 끝까지 노력한다. 이에 더해 경기가 끝나면 바로 점수를 발표하기 때문에 선수들은 조직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된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선발기준과 평가과정을 공개하기 때문에 선수들도 다음번에는 국가대표로 선발될 수 있도록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자고 다짐할 뿐 조직에 대한 불신을 갖지 않는 것이다. 선발된 선수들 또한 투명한 과정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거쳐 선발된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게 된다.

 

한국 양궁이 HR에 주는 시사점

지금까지 한국 양궁의 인재 육성, 교육 방식, 평과 평가 등 한국 양궁의 인재관리 전략에 대해 살펴봤다. 그렇다면 한국 양궁의 인재관리 전략이 기업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세 가지로 나눠 소개해 보겠다. 

 

먼저, 조직구성원들에게 효과적이고 일원화된 교육을 받게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인사부서를 만들어야 한다. 대부분의 기업 교육이 일회성, 단발성 교육에 그치고 있고 강사를 초빙해 실시하는 교육의 경우, 강의안 공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어떤 분기에, 어떤 교육이 실시됐는지조차 조직 내에서 공유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 조직 구성원들이 스스로의 역량에 맞는 교육을 받기도, 교육을 통해 얻은 성과를 측정하기도 어렵다. 이제는 한국 양궁에서 코치를 양성하듯 기업에서도 인사담당자간의 원활한 정보교류, 방향성 갖춘 교육 체계 완성을 통해 조직구성원들의 역량을 향상시켜야 한다.

 

다음으로 현대 사회에서 기업의 가치는 그 기업이 가진 부동산과 유형자산이 아니라 기업의 지적능력과 이를 이끌어 내는 인적자원에 있다. 급변하는 세계에서 살아남을 우수한 인적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한국 양궁처럼 변화한 환경에 최적화된 인재상을 찾고 이 인재상에 맞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바람직한 교육 방법을 고안해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인재를 찾고 육성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평가를 얼마나 공정하게 하는가이다. 멀리, 길게 가는 조직이 되고 바람직한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조직구성원 모두가 납득하고 신뢰할 만한 공정한 평가기준과 이 평가기준을 실행하는 조직의 명확한 대처를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