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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스토리

오늘 업무? 내일의 내가 해결하겠지!

 

오늘 업무? 내일의 내가 해결하겠지!

우리가 일을 미루는 이유

 

 

 

유독 시험기간만 되면 TV가 눈에 들어옵니다. 일일 드라마도 꿀잼이고 심지어 열린음악회도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죠. 그렇게 두세 시간 딴짓을 하다가 책상으로 돌아오면 허탈하기 그지없습니다. 시간은 가는데 공부는 하기가 싫고.. 결국 또 벼락치기. 번개소년의 초 스피드 공부법은 이번 시험에서도 여전합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원이 되었으니 이런 성향도 당연히 고쳤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아요.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다가 데드라인이 촉박해서야 야근에 주말근무를 불사합니다. 번개소년 노하우가 통할 때도 있지만 안 그럴 때도 있어서 문제죠. 보고서 대충 작성했다가 팀장님께 된통 혼이 납니다. 정신 차리고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하면 좋으련만..

 

 

 

우리는 대체 왜, 도대체 왜 이렇게 오늘 할 일을 미룰까요?

 


 

 

이런 의문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대답은 '개인의 성격적 결함'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게을러서, 목표의식이 없어서, 책임감이 없어서'로 풀어볼 수 있겠고, 한 마디로 정리하면 '아직 철이 없어서'가 될 것 같습니다. 성숙하면 책임감이 생길 텐데, 그렇지 못해서 일을 미룬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와 정반대의 주장도 있습니다.

 

개인의 책임감, 성숙도 문제가 아니라 외부 환경 때문이라는 주장인데, 사람에게는 일과 휴식 사이의 균형이 필요한데 기업 환경이 사람에게 이런 휴식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휴식을 부여하기 위한 작용으로 일을 미루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 역시 말이 됩니다. 주 52시간제 시행 등으로 예전보다는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기업 환경은 치열하고 사람을 몰아세우는 문화입니다. 그래서 일을 붙잡고 뭉개기 전략을 취함으로써 사회가 허락하지 않는 휴식을 자체적으로 가지려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것 말고 다른 이유는 또 없을까요?

 

최근에 몇몇 심리학자들이 실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일을 미루는 또 다른 이유를 찾아냈습니다. 바로 '삶의 가치'라는 것입니다. (Grund, A., & Fries, S. (2018). Understanding procrastination: A motivational approach.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121120-130. doi:10.1016/j.paid.2017.09.035)  

 

보통 일을 미루면 '의지는 있는데 모종의 이유로 인해 시작을 못하고 있다'라고 생각하고, 그 '모종의 이유'에는 책임감 같은 개인적/내부적 원인 혹은 기업문화 같은 외적인 이유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실험에서 심리학자들은 근본적으로 그 일을 해야 한다는 '동기 혹은 의지'가 생겨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합니다. 하려는 의지 자체가 없는데 일이 주어진다고 해서 바로바로 처리하는 것은 거의 성인군자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의지가 생겨나지 않는 원인에 대해서는 '삶의 가치'혹은 '일에 관한 통제 권한'을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로, 주어진 업무가 우리가 가진 어떤 가치와 다르거나 혹은 개인의 관심을 끌지 못하면 그 일이 '해야 하는 일'임을 알지만 결국 뒤로 미루게 된다고 합니다. 가령 윗사람들 눈치 보면서 강제로 야근까지 해야 하는 회사에서는 현시대를 사는 우리가 가진 '워라밸'이라는 가치와 충돌하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에 일을 미루게 된다는 것이지요.

 

두 번째로는 개인이나 시대 가치와 일치하지 않더라도, 주어진 일에 대한 통제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 일을 미루는 경향이 줄어든다고 합니다. 첫 번째에서 든 사례에 이어 설명하자면, 강압적인 분위기는 개인이 자기 업무를 언제,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에 관한 선택권도 없으니 일을 뒤로 미루는 경향을 부추기게 됩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우리에게 몇 가지 시사점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는, 직원들에게 자기 업무에 대한 통제/결정권을 주고 다양한 방법을 자유롭게 시도해볼 수 있는 시스템과 문화를 제공하지 않는 한 직원들은 일에 몰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직원들을 모아놓고 연수니 뭐니 해서 정신교육을 시키고 윽박지르고 공포 분위기 조성할수록 직원들은 일을 안 하고, 부실한 결과물을 예쁘게 잘 포장하는 전술만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죠.

 

인간의 자율권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의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조직 관리와 동기부여 측면에서 생각해봐도 개인에게 업무에 관한 통제권을 주는 것은 어쩌면 선택이 아닌 필수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기업 경영진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당연합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생소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국내 기업의 경영진들은 Delegation/Empowerment에 대한 훈련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안 그래도 워라밸이다 뭐다 해서 일 안 하려는 애들한테 뭘 믿고 권한을 주느냐."는 반응이 아마 대부분일 것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 시사점은 경영진이 좋아할 것 같은 이야기인데요, 바로 회사의 지향점과 업무 방식에 동의하는 직원이 성실하게 일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업무를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자기의 '내적 가치'와 일치하는 직원일수록 일을 미루지 않고 성실하고 주도적으로 수행하게 됩니다. 게다가 굳이 일에 대한 통제권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본인 스스로가 자기 주도적으로 일하면서 일에 대한 통제 범위를 넓히고자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즉, 조직에 대한 '수용도'와 '자기 주도성'이 높은 사람일수록 일을 미루지 않고 적절한 시점에 퀄리티 있는 결과물을 내놓는다는 말입니다. Delegation/Empowerment와는 무관하게 애초에 이런 직원을 뽑으면 된다는 것이지요. (국내 기업들이 직원 채용 시 인적성 검사를 보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아이큐 테스트를 해서 머리 좋은 직원을 뽑자는 목적이 아닙니다.)

  

물론 조직에 똑같은 사람들만 모이게 되면 조직이 ‘집단 사고’ 즉, 권력자의 의견에 대해 무조건 추종하고, 비판 없이 받아들임으로써 조직을 위기로 끌고 가는 확률도 올라가고, 경쟁의 양상이 단순한 성실성이 아니라 참신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성실성만큼 중요한 시대가 되면서 단순히 일을 미루지 않는 사람만 뽑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만, 조직을 구성할 때 이 부분에 대한 고려를 충분히 해봐야 하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정리를 좀 해보겠습니다.

 

일을 미루는 것은 실제 개인의 품성 (책임감 등)이 부족해서 일수도 있고, 혹은 외부의 강압이 너무 많아서일 수도 있지만, 이 둘보다는 직원들에게 제대로 된 동기부여 요소, 즉 이 일을 하고 싶은 의지와 이유를 주는 것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성실성과 실행능력만으로 직원을 뽑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일을 확실하게 진행시켜내고 싶은 직원을 뽑을 땐 회사의 가치나 지향하는 바, 일의 내용 등에 동의하고 일치하는 직원을 뽑아야 합니다. 

 

그리고 직원들에게는 업무에 대한 자율권을 최대한 인정해줘야 합니다. 강압적인 방법, 즉 업무를 해야 할 이유를 자꾸 외부에서 제공하면 직원들은 업무를 미루게 됩니다.  

 

다만, 직원을 너무 동일한 성향의 사람들로 뽑으면 집단사고에 빠질 위험이 있고, 성실한 업무 수행만이 경쟁력 요소가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고려도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회사 일이 아닌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 일을 미룬다는 것은 가치의 충돌이나 자율권의 이슈라기보다는 그냥 그 일을 할 동기부여 요소가 스스로 없는 상태일 가능성이 큽니다. 미루는 게 습관인 것 같다면, 왜 그 일을 하려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대답을 고민하는 게 우선인 것 같습니다. 자기의 내적 가치, 즉 나는 놀고먹고 싶다는 생각이 이 일을 해야 먹고 산다라는 외부적 동기 요인을 이기고 있는 것이니까요. (사람들 중에는 성인인데도 일을 미루는 정도가 너무 심해서 거의 모든 일에 대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경우엔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동기부여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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