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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스토리

[팀장으로 산다는 건] #16 팀장도 때론 잠시 멈춤이 필요하다

[팀장으로 산다는 건] #16 팀장도 때론 '잠시 멈춤'이 필요하다

 

가끔 연락을 주고 받는 어릴 적 친구가 있습니다. A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 고향으로 이사를 갔는데 이후에도 간간이 안부를 묻고 지냈습니다. 대입을 앞두곤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죠. 성적은 되지만 집안 사정으로 서울로 대학을 가기 힘들다는 얘기였습니다. 어릴 적 이사를 가게 된 것도 그런 연유였단 걸 그때 알게 됐습니다. 결국 그 친구는 지방 국립대학에 4년 장학생으로 입학했습니다. 저보다 몇 배는 더 똑똑한 친구라 제가 다 아까웠습니다. 본인은 역시 서울로 오지 못한 것이 큰 열등감으로 남았던 모양입니다.

 

대학을 졸업할 때쯤, 그가 누구나 알만한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대학으로는 상경을 못 했지만, 직장으로는 상경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더군요. 직장인이 된 그는 완벽한 생활을 하는 듯 보였습니다. 남보다 승진도 빠르고 직장인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먼저 '1억 연봉'을 찍었다는 얘기도 들렸습니다. 결혼해 슬하에 아이도 둘 두고.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연락이 잘 안 되기 시작했습니다. 바빠서 그렇겠거니 생각하죠 말았는데, 몇 년 만에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 잠시 볼 수 있을까?" 

 

 

갑작스런 전화의 첫마디였습니다. 그 잠시는 무려 세 시간이나 이어졌죠. 격정 토로랄까. 그 모습은 마치 비 맞고 맞으며 맹수에 쫓기다 겨우 살아난 토끼처럼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그 친구 말을 정리하자면 이랬습니다.

 

지방대 출신인 자신을 인정해 주는 회사에 감사해 혼신을 다해 일했다. 실적도 좋아 인정을 받았고, 3년 전엔 팀장도 달았다.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장'이 된 만큼 본인의 목소리를 내보려 했지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상무는 자신을 불러 "왜 이렇게 변했냐"고 다그치더라. 팀원들 사이에선 상무 눈 밖에 난 자신을 팀장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의욕이 떨어지니 누적된 육체적 피로가 한번에 몰려와 물에 젖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는것 같다. 매일 아침 출근이 괴롭다. 퇴사를 고민 중이다. 이런 모습에 아내도 놀라고 불안해하고 있다. 

 

 

제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지만 뭐라고 조언을 할 수 있을까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결국 해줄 수 있는 건 '감정적 공감' 정도가 아닐까. 친구니까 오지랖을 떨어보기로 했습니다.

 

" A야, 지난주에 누구랑 어디서 어떻게 시간을 보냈어?"

 

"뭐라고?"

 

"그냥 알고 싶어서 그래. 그래야 내가 뭐라도 도움되는 얘길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평일엔 집이랑 회사를 왔다 갔다 했고. 그 중 사흘은 9시 넘어까지 야근을 했지. 토요일엔 사내 등산 동호회 사람들과 관악산에 갔다 술 한잔하고. 음, 일요일엔 늦잠 좀 자고 오후엔 아내와 마트에서 장보고 영화 봤지."

 


"지난주만이 아니라 지지난 주도, 그 이전도 비슷했겠지?"

 

"그.. 그랬었지."

 

"내 생각엔 넌 열심히 살아왔어. 근데, 그건 회사를 위한 거였지. 그냥 회사 기준에 맞춰 잘 살아왔다는 거야. 이제 여유가 생기니까 '잠자고 있던 너'가 깨어난 거야. 너답고 싶었던 시간을 보상이라도 해달라는 것처럼."

 

"일이 안 되니까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컨디션도 안 좋아지고, 그러다 보니 팀원들하고 관계도 나빠지고. 그래서 자괴감에 빠진 것 같아. 다만, 그건 '일'이잖아. 너를 설명하는 '일부'일 뿐이라고. 그게 뭐라고 널 이렇게 망치고 있니."

 

처음에 심드렁하게 대답하던 친구는 제가 얘길 마치자 한동안 저를 멍하니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떨궜습니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

 

최근 인사 담당 퇴직 임원분과 얘기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몸담았던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에 관해 솔직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우선 입사성적, 기본역량 등에 따라 S급 인재, A급 인재, 일반 인재로 구분한다셨습니다. 비율은 대략적으로 각각 5%, 15%, 80%.

 

대다수에 속하는 일반 인재는 '벽돌'로 비유하시더군요. 특출나지 않지만 기본역량은 갖고 있어 어느 부서에 배치해도 무난히 그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 기업은 그런 인재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요즘 지원자들 대부분 스펙은 갖추고 있으니, '충성도' 높은 인재를 고르는 것이 우선순위 No.1이라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듣는데 A가 떠올랐습니다. 내 친구도 이런 사람이었구나. 회사에 감사하며, 어디서나 자기 역할을 다할, 충성도 높은 벽돌 같은 사람.

 

 

 

* 전 인사 담당 임원과의 대화 내용

 

Q. 그 회사는 요즘 자율성과 창의성을 강조하던데요?

 

A. 그거, 중요하죠. 하지만 결정은 '위'에서 합니다. 직원들은 그걸 묵묵히 실행하는 게 필요한 거고, 오로지 결정을 처리하는 범위 안에서 자율성과 창의성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Q. 원하는 직원을 '벽돌'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개성을 존중하는 요즘 세대들한테도 가능한 것인가요?

 

A. 물론 예전 시대처럼 '까라면 까라'는 식으로는 접근할 수 없습니다. 좀 더 유연하고, 지능적으로 접근해야죠.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교육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관련 예산과 시간이 늘리고 있어요. 아울러 자발적인 학습조직이나 취미 동호회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일뿐만 아니라 그 외 활동으로도 회사와 직원을 연결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Q. 충성심이 높은 인재를 확보하고 유지하는 비결이 있나요?

 

A. 사실 우리 회사는 SKY 출신 비율이 비교적 낮습니다. 80%를 차지하는 '일반 인재'로서 SKY 출신들은 적합하지 않다는 게 결론이에요. 차라리 우리 회사에 입사한 걸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우리 회사에서 오래 근속하고 성과도 나쁘지 않다는 게 공개되지 않은, 오랜 경험칙입니다.

 

 

반환점을 돈 팀장의 삶

 

'나는 열심히 살고 있는가'라는 강박 의식을 갖는 직장인들이 많습니다. 자기계발서적과 유명 연사들은 동기부여를 강조하며 우리에게 나태라는 죄의식을 심어주길 주저하지 않죠. 제 친구처럼 '팀장'을 달 정도의 사람이라면 열심히 살아왔을 겁니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충성심도 올라가고, 그러다 보면 나와 회사의 구분이 희미해집니다. 결국엔 회사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친구는 SNS에 자사 제품 사진을 누가 올리면 '써줘서 고맙다'는 댓글을 달곤 했습니다. 가볍게 볼 일이 아니었네요.

 

팀장이 됐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10~15년 이상의 경력을 쌓았다는 것입니다. 직장인의 현실적인 퇴직 연령이 50대 초반임을 고려한다면, 중간 반환점 부근에 서 있는 거죠.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번아웃까지는 아니더라도, 반복되는 일상에 나 자신이 소진된다는 느낌도 들 수 있습니다. 그때가 바로 '나를 돌아보는 잠시멈춤'이 필요한 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유명한 경영 컨설턴트이자 경제학자인 오마에 겐이치는 인생을 바꾸기 위해선 세 가지를 바꿔야 한다고 했습니다. 첫째, 보내는 시간, 둘째, 만나는 사람, 셋째, 지내는 공간. 사실 이 세 가지가 떠올라서 친구에게 질문한 거였습니다.

 

 

보내는 시간은 활동을 의미합니다. 평일에는 직장, 주말에는 가정. 대다수 직장인의 일상일 것입니다. 거기에 한 가지만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추가해보면 어떨까요? 매일은 어렵다면 주에 한 번 정도라도 괜찮을 겁니다. 예전 제 후배는 주말에 요리학원을 다닌다고 했었습니다. 번듯한 회사에 다니는데 웬 요리? 다들 한마디씩 했는데, 지금은 어엿한 오너요리사가 돼 있습니다. 직장 다닐 때보다 몸은 힘들지만 몇 배는 더 즐겁다고 합니다.

 

만나는 사람 역시 활동과 연관이 있습니다. 대개 다른 활동을 찾아야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나이가 들면 익숙한 사람들만 만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만 편안한 사람들과는 '과거'가 주된 얘깃거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 한국의 피자왕이라고 일컬어지던 '성신제'라는 분이 있습니다. 비록 여러 차례 사업에 실패했지만, 한국 프랜차이즈 업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죠. 연세가 칠순이 넘었는데도, 사업적으로 어린 친구들과 만남에 설렘을 느낀다고 합니다. 

 

성신제 대표. 출처 동아일보DB

 

"제 나이 또래 친구들하고 잘 안 만나요. 미래에 대한 얘기는 없고... 전부 앉아서 '옛날에 네가 어찌 됐냐, 내가 어쨌냐' 같은 옛날 얘기만 하잖아요." (SBS 스페셜 478회)

 

지내는 공간 바꾸기는 단기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사는 집과 직장이 주된 공간인데 금세 어떻게 바꾸겠습니까. 단기적으로 잠시 멈춰서 뒤돌아 볼 수 있는 작은 공간을 가져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저는 집 근처에 스터디카페에 종종 들립니다. 주로 생각을 정리하거나 글을 쓸데 조용한 분위기에서 집중할 수 있어 선호하는 편입니다. 거창하게 여행을 떠나는 것 말고도 일상에서 잠시 떨어져 있을 공간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우리는 압축적인 성장을 강요받았는지도 모릅니다.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이 방향이 맞는 줄 알고 뛰어왔는데 어느 순간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너무 내달리다 보면 방향이 잘못 됐다는 걸 알아도 돌아오기 힘들 수 있습니다. 속도보다는 언제나 ‘방향’이 더 중요합니다.



 필자 김진영 (jykim.2ndlife@gmail.com) 

■ 정리 인터비즈 박은애 

 

대학에서 문학을, 대학원에선 경영학을 전공했다. 22년 동안 대기업 중견기업 벤처 공공기관 등을 거치며 주전공인 전략기획 외에 마케팅 영업 구매 인사 등 다양한 업무를 경험했다. 최근엔 개도국 전자정부 컨설팅부서에서 프로그램 매니저를 맡고 있다. '성장과 발전은 끝이 없다'를 신조로 삼고 있으며, 함께 성장하기 위해 조직에 학습조직을 만들고 사내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최근 관심사는 조직 변화와 새로운 리더십이다. 현재 <팀장클럽>에서 '팀장으로 산다는 건'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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