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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스토리

[팀장으로 산다는 건] #9 카리스마 없는 팀장이 낫다

[팀장으로 산다는 건] #9 카리스마 없는 팀장이 낫다


 

직장인 대나무숲 앱 '블라인드'를 종종 살펴봅니다. 정보도 얻고, 요즘 팀장들은 무엇을 고민하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요. 최근 카리스마로 고민하는 팀장의 글을 보았습니다. 아래 내용 일부입니다. (흐름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조금 가공했습니다) 

 

“난 30대 팀장이야. 부서원은 10명이고, 나이 차이는 위아래로 다섯 살 정도 돼. 위에서 (내가) 업무적으로 딱히 문제가 될 건 없는데 ‘카리스마’가 없대. 너무 착해 빠졌다고 하더라고. 그렇다고 부서원들이 (나를) 따르지 않는 건 아냐. 근데 내가 (팀원들을) 휘둘러야 할 때 지나치게 이론적으로만 접근한대. 어쩌라는 걸까? 팀장이 왕이야? 막 휘둘러야 돼?"

 

‘위’라는 것은 ‘임원’을 뜻하는 것이겠지요. 글을 쓴 팀장이 ‘너무 무르다’는 지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본인들은 카리스마 끝판왕쯤 되나 봅니다. 부하직원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찾아가서 물어보고 싶습니다.

 

 

팀원은 카리스마 있는 팀장을 따를까

 

'카리스마'는 직원들의 동의를 끌어내는 기운이나 능력을 일컫는 말입니다. 제가 경험해 본 상사 중 예전 회사 컨설팅 사업본부장(이사)은 카리스마 있는 상사로 볼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준수한 외모에 좋은 학벌, S사 출신에 능력도 출중했습니다. 사업을 꿰뚫어 보는 능력은 물론, 발표력도 대단했지요. 200 페이지가 넘는 제안서를 첫 장과 끝 장 빼곤 화면 한번 안 보고 완벽히 발표했습니다. 고객사 담당자들 입이 떡 벌어졌지요. (하지만 '묘한 반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스티브잡스는 프레젠테이션의 달인이자, 카리스마 강한 리더로 꼽힌다. 출처 Wikimedia

 

워낙 카리스마 넘쳐서 그랬을까요? 저는 (지시에 의해) 그가 다녔던 경영대학원 숙제까지 대신에 해주곤 했습니다. 그 외에는 직접 업무와 관련해 대화를 한 적도 드물었고, 회식 자리도 많지 않아 어떤 사람인지는 잘 알 수 없었습니다.

 

불행히 그 당시 닷컴 버블로 회사가 위기에 처했습니다. 사업본부장은 컨설팅 사업부 인력의 집단 이직을 주도 했습니다. 저는 그 대열에 합류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다행인 것 같습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OB 모임을 하고 있는데, 그때 그 카리스마 본부장은 나오지 않습니다. 얼마 전 모임의 형이 이런 얘길 했습니다.


"우리가 A 이사 보고 일한 게 아니잖아. 밑에 B 부장이 뒤치다꺼리 다 했고, 우린 그 사람 보고 일했지."

 

맞는 말이었습니다. A 이사가 일장 연설을 하고 가면, B 부장이 다 정리하고 팀원들을 챙기곤 했습니다. B 부장은 업무는 칼 같이 매섭고 꼼꼼하게 처리했지만, 팀원들에겐 온화하게 대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과거엔 카리스마 넘치는 팀장이 많았는데...

 

가끔 해리포터의 마법 스틱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개념 없는 신입 팀원, 머리 좀 굵어졌다고 대드는 선임 팀원, 어린애들도 아닌데 왜들 싸우는지... 이걸 그냥 한방에, 마치 타노스의 핑거 스냅처럼 해결하고 싶었지요. 하지만 이 세상에 그런 해결책은 없죠. 허무함만 커져 갔습니다.

 

나름대로 카리스마를 가져보려고 노력도 해봤습니다. 회의 때마다 회사의 가치체계를 설파하고, 근태 규정을 철저히 지키도록 하며, 회의 안건은 사전에 충분히 고민하고 회의에 참여해서 리딩에 부족함이 없도록 준비했습니다. 팀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아마도 요새 팀장이 안 하던 짓을 하며, 이상해졌다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낯 뜨거워지는 기억입니다. 카리스마는 결코 노력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지요.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돌이켜보면 '예전'에는 카리스마가 있는 상사가 많았습니다. 뭐든 만들어도 잘 팔리던 80~90년대(IMF 이전까지)에는 기업은 언제나 팽창일로였습니다. 상명하복의 수직적 체계에서 본인의 능력이 받쳐만 준다면 쉽게(?) 승진할 수 있었습니다. 고급 정보도 그에게 모이죠. 거기다 윗선의 신임을 받고 실적까지 따라준다면 자연스럽게 '카리스마 있는 상사'가 될 수 있었죠.

 

지금의 조직은 과거와 아주 다릅니다. 정보는 공개되어 있고, 직원 개개인은 전보다 똑똑하며, 권위보다는 개성이 중시되는 시절입니다. 어쩌면 이런 여건이 현재를 사는 팀장에겐 더 골치 아픈 상황일 수도 있겠습니다.

 

 

카리스마는 어디서 나오는가

 

한동안의 성과 없는 '카리스마 놀이'가 끝날 때쯤, 불현듯 상사 한 분이 떠올랐습니다. 저의 첫 번째 직장, 첫 번째 팀장님이요. 그도 '과거'의 상사였지만, 조금 달랐습니다. 대기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실적으로 팀장 자리에 올라온 분이었죠. 카리스마 있는 분이셨는데, 환경적 요인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팀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행동으로 팀원들을 설득할 줄 아는 분이셨습니다. 실수를 했을 땐 기꺼이 인정하셨죠. 농반진반으로 팀원들에게 "아니꼬운 이 회사 때려치우고 나가서 같이 사업하자"고 자주 말씀하셨는데, 후에 실제 회사를 만들어 팀원 몇 명과 함께 하셨습니다. 회사 사정이 좋지 않을 때도 직원들을 내보내지 않고 사재를 털어가며 운영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그 후 몇 년이 지났을까요. 갑작스레 그 팀장님의 부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둑어둑해진 야밤에 도착한 촌 동네 영안실. 예전 함께 근무했던, 대리님, 과장님, 차장님이 먼저 와계셨습니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해 덤덤한 상황이었는데, 과장님이 불쑥 한마디 하셨지요.

 

"OOO 사장님이 돌아가셨다고. 우리가 모셨던 팀장님이..."

 

그 순간 갑자기 시커먼 남자 넷이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시작했는진 모르겠습니다. 남을 위해 그렇게 울어본 건 난생처음이었습니다. 슬픈 와중에 '내가 죽으면 우리 팀원 중 날 위해 울어 줄 사람이 있을까'란 바보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업무 뛰어난 팀장이 좋은 리더는 아닐 수 있다 

 

오래 전 지인에게 들은 얘기가 있습니다. 유명한 국가대표팀 감독이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을 때, 프리킥 시범을 보였는데, 선수들보다 휠씬 더 잘 찼다고 합니다. 이걸 본 선수들은 '아, 우리 감독님처럼 잘 차도록 나도 노력해야지' 했을까요? 다들 기가 꺾였다고 합니다.

 

카리스마 있는 상사 곁에는 사람이 없는 법입니다. 너무나 완벽하기 때문에 조언자도 필요 없고, 조수도 필요 없는 것이지요. 단지 팔로워만 필요할 뿐입니다. 제가 카리스마를 가지려 노력했을 때를 돌이켜보면 무척 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팀원들은 제 주변에 있으려 하지 않더군요. 제 판단이 틀렸음을 깨닫는 데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렸습니다.

 

완벽한 카리스마보다는 부족한 제 모습이 팀원들과의 관계 설정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축복 같은 일이었습니다. 잘못을 숨길 때보다 드러내 놓고, 인정할 때 팀원들과 관계가 좋아졌습니다. 사과하는 그 짧은 순간은, 정말 어디라도 숨고 싶었지만, 오류를 받아들이고 개선을 약속하면 저는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팀원들도 그런 모습에 익숙해져서 지적이나 의견 제시를 많이 하게 됐습니다. 그럴 때마다 리더란 앞에서 끌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옆에서 함께 하는 페이스 메이커란 생각을 더 하게 됩니다.

 

 

카리스마 없어도 괜찮다

 

많은 사람이 아직도 카리스마 있는 리더를 꿈꾸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카리스마가 없는(혹은 부족한) 것에 대해 더는 부담감과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카리스마는 점점 그 효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세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리딩에는 다른 것들이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과거’의 카리스마처럼 한방의 마법 스틱은 존재하지 않게 됐습니다.

 

카리스마는 오히려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리더가 완전체이기 때문에 주위엔 예스맨들만 존재하게 되고요. 리더는 예스맨들의 시중을 받으며, 자기도취에 빠져 현실감각을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타인과 환경에 대한 무감각이 초래될 수 있는 위험성이 크다고 봅니다. 상식적으로만 생각해도 이런 상사는 올바른 모습이 아니겠지요.

 

한 명의 뛰어난 팀장보다는 팀원들이 따라주는 부족한 팀장이 백 배는 낫습니다. 부족함도 달리 생각하면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필자 김진영 (jykim.2ndlife@gmail.com) 

■ 정리 인터비즈 박은애 

 

대학에서 문학을, 대학원에선 경영학을 전공했다. 22년 동안 대기업 중견기업 벤처 공공기관 등을 거치며 주전공인 전략기획 외에 마케팅 영업 구매 인사 등 다양한 업무를 경험했다. 최근엔 개도국 전자정부 컨설팅부서에서 프로그램 매니저를 맡고 있다. '성장과 발전은 끝이 없다'를 신조로 삼고 있으며, 함께 성장하기 위해 조직에 학습조직을 만들고 사내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최근 관심사는 조직 변화와 새로운 리더십이다. 현재 <팀장클럽>에서 '팀장으로 산다는 건'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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