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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매거진 조직문화

[의사결정 방법론] 왜 퍼실리테이션이 화제인가

2021-04-27

 

 

 

 구기욱 쿠퍼실리테이션그룹 대표 / 《반영조직》 저자


퍼실리테이션이 핫하다. 수평적 조직문화, 애자일 도입, MZ 세대, 도시재생에 이르기까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퍼실리테이션이다. 아주 새로운 개념은 아니지만, 요즘 부쩍 늘어난 관심과 확산의 바탕에는 무엇이 깔려있는 것일까? 

퍼실리테이션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의 본성과 변화하는 상황을 토대로 분석해 보면 크게 다음의 다섯 가지 이유를 제시할 수 있다.



1. 나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한다

블라인드가 핫하고, 클럽하우스가 핫하다. 자신의 목소리를 편하게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살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집단의 일원으로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싶어 한다. 역할을 한다는 것은 '뭣이 중헌디!'에 대한 의견을 내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을 말한다. 내 목소리가 집단이나 조직의 결정과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이 땅에 태어나서 20년 넘게 공부에 매진했다. 입시를 위해서든, 취업을 위해서든 학업에 열중했다. 많은 지식을 습득했고 꿈을 이루려는 열망도 키워냈다. 직장에서도 배우려는 자세로 귀를 쫑긋 세워 배움을 이어가지만 조직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는 어렵다. 배운 것을 쓸 수 없는 좌절감이 찾아온다.


사원과 대리를 거쳐 과장이 되었다. 이제는 회사 돌아가는 것을 알고 주어진 과업을 책임 있게 수행할 안목과 경험도 쌓였다. 그러나 아래로는 알 수 없는 신입사원의 태도와 충돌하고, 위로는 팀장과 임원의 스타일에 맞춰야 한다. 여전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는 어렵다.


팀장이 되니 할 일이 너무 많다. 팀장이 되기 전에는 내 목소리 없이 일했다고 생각했는데,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수많은 팀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옛 팀장처럼 고유 업무가 없는 것도 아닌데, 위아래에서 쏟아지는 목소리를 전달하고 처리하느라 정작 내 목소리를 낼 겨를이 없다. 어쩌다 조금 내려면 '꼰대다' '대든다'는 소리를 듣는다.


사장이나 임원이 되었다고 목소리를 마음대로 내는 것도 아니다. 구성원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달라 아우성이고 정작 조직 전체를 위하여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 목소리는 조직에 전달이 되지 않는다. 


남의 목소리는 많은데 내 목소리는 없다. 적어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떻게 좀 더 목소리를 살려낼 것인가?



2. 사람은 무리 속에서 살아간다

'일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관계가 어려운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때 관계의 어려움은 사람마다 다양하게 겪지만, 몇 가지 핵심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가족, 기업, 조합, 국가 등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산다. 집을 짓거나, 도둑을 막거나, 화장품을 만들거나, 전쟁을 치르거나, 전염병을 퇴치하거나, 이것을 하든 저것을 하든 협력이 필요하다. 심지어 1인 기업을 하는 사람, 버츄얼로 일을 하는 사람마저도 삶과 일의 현장에서는 대부분 무리와 함께 존재한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무리와 협력하고, 나아가 보다 나은 성취를 위해 타인과 협력한다. 이 무리와 협력하는 삶에는 내재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바로, 더 나은 성과를 내는 사람, 일하지 않는 무임승차자라는 '차이'의 출현이다. 나은 성과를 내는 사람은 문제가 아닌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나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내는 사람을 만나면 배가 아프고, 무임승차자를 만나면 화가 난다. 잘해도 못해도 괴로움을 만들어낸다. 피할 수 없는 내재적인 문제이다. 블라인드에 올라오는 끊이지 않는 평가와 인사 불만은 여기서 비롯된다. 


이 '시기'와 '분노'는 자연스런 감정이다. 필요하기 때문에 인류에게 생겨난 감정일 것이다. 그러나, 그 자연스런 감정이 무리 안에서 자주 발생하면 무리의 삶은 효용과 의미를 잃게 된다. 그리고 이직이 늘어난다. 그러므로 '시기'를 불러오는 고성과자와 '분노'를 유발하는 저성과자 사이의 조율이 필요하다.


인류는 무리에서 필요한 조율을 위해 누군가를 리더로 삼아왔다. 그러므로 어느 조직을 가나 많은 리더들이 있다. 그리고 서점에는 수만권의 리더십 책이 출간되어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리더가 없다'는 아쉬움을 종종 느낀다. 어떤 리더를 원하기에 여전히 리더에 대하여 목마른 것인가?



3. 우리는 탐색하고 결정한다

수소차냐, 전기차냐? 그것이 문제로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선택은 결정을 뜻한다. 삶에 유리한 결정을 위하여 끊임없이 탐색한다. 그리고 행동의 순간을 맞이하면서 결정을 내린다. 


오감은 탐색을 위한 정보의 수집 통로가 된다. 그리고 오감으로 수집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처리하여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결정을 내린다. 조직 역시 구성원 개개인을 통하여 이를 실현한다. 이 과정을 조금 단순화하여 정리하면 마주침-정보-지각-탐색-결정-행동의 순서가 보인다. 어느 것이 우리에게 최선인지에 대한 탐색과 결정이 인간과 조직의 지적 활동의 핵심이 된다. 


결정은 행동에 앞서고, 행동은 영향에 앞선다. 결정은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다. 즉, 행동할 것을 결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결정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제로는 행동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담배를 끊기로 결심했어' '이번에는 꼭 다이어트 할 거야'와 비슷하다. 진심으로 행동할 것을 결정한 것인지, 전시와 회피를 위한 결정을 한 것인지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본인마저 스스로 착각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과정에 누군가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행동은 외부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그 영향은 자기 또는 외부에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다. 외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 그 외부 또는 고객은 금전적이든 비금전적이든 대가를 지불할 의지를 가지게 된다.


탐색과 결정은 바로 여기를 향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조직은 수많은 회의를 개최하고 수많은 보고서를 만든다. 하지만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 제대로 탐색하고 결정하는 데는 무엇이 더 필요한 것인가? 



4. 나와 조직은 어떤 관계인가

조직은 내 성취의 발판이 된다. 달리 말하면 도구다. 조직 밖에서 혼자 이룰 수 있는 성취의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다. 자연인 또는 구도자로서의 삶을 선택한 경우라면 차원이 다르다. 그러나 세속에서 자부심과 성취감을 맛보며 살고자 한다면 어떤 조직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1인 이상의 기업을 창업하거나 기존 조직의 CEO가 되는 것도 포함된다. 


자신이 조직을 도구로 삼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조직이 나를 도구 삼는다고 아우성이다. 칸트는 '인간을 목적으로 대우하라'면서 인간의 도구화를 경계했다. 도구로 삼는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악행이 된다. 


도구가 되는 것을 피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결정자가 되는 것이다. 자신이 결정한다는 것은 자신의 목적을 위한 유리한 결정을 하는 것이므로 자신을 목적적 존재로 만드는 것이 된다. 하지만 자신의 어떤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결정은 바로 자신 이외의 타자를 도구 삼는 것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목적을 갖고 사는 한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는 도구가 된다.

 

조직은 조직의 목적이 있고, 나는 나의 목적이 있다. 서로 배타적으로 목적을 실현한다면 그 상대방은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따른다. 그러므로 목적의 상호 구성이 필요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자발적 도구로서의 헌신이 필요하다.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은 구성원 모두 결정의 주체가 되는 것(수평적 조직문화, 공유 리더십)이고, 자신이 결정했기 때문에 그 결정을 실천하는 자발적 도구가 되는 것(서번트 리더십)이다.


다이어트를 결정했기 때문에 스스로 맛있는 것을 먹지 않는 것과 같다. 다이어트라는 목적에 스스로 자발적 도구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목적과 도구는 어떻게 통합되는가?



5. VUCA, 고지식 세상

'결정 장애가 있어요.' 

MZ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VUCA 세상이 되었다. 주변은 변덕스럽고, 미래는 불확실하고, 원인과 결과는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세상을 바라보는 저마다의 시각은 오만가지다.


그 어느 때보다 학력이 높은 세상이 되었다. 학교 교육을 마치고도 기업 교육을 통해 배우고, 언론과 방송을 통해 배우고, 팟캐스트와 유튜브를 통해 배운다. 클럽하우스와 같은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고 그 곳에서 신선한 경험과 시각을 마주한다. 아는 것이 많아진 구성원들이 조직에 모여있다. 고지식 세상이다. 아는 것이 많다는 것은 목소리를 내고 싶은 욕구가 높아진다는 의미를 지닌다. 미래를 위하여 어떤 결정이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리더에게 '답을 말해 주세요'하면서 의존하고, 권위를 부여하던 시대와는 판이한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리더는 답을 주는 역할 보다는 구성원의 고지식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리더의 정보와 지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구성원들은 너무 많은 정보를 가졌지만, 어떤 결정을 내릴 지 확신이 부족하다. 조직을 둘러싼 환경은 VUCA로 변화무쌍하다.


조직은 행동하기 전에 탐색하고 결정해야 한다. 우리는 이를 가장 효율적으로 해내는 리더를 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바로, 퍼실리테이션의 시대가 된 것이다.



퍼실리테이션이 뜨고 있는 것은 앞서 언급한 다양한 상황과 본성이 결합된 결과이다. 확립된 권위에 의존하여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새로운 정보를 종합하여 통섭의 결론을 만드는 과정을 조직이 보유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퍼실리테이션은 바로 이것을 잘 해내는 일련의 철학, 이론, 스킬, 도구의 총합이다. 결과적으로 잘 해내는 것이지 퍼실리테이션이라고 주장하고 이름 붙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퍼실리테이션을 제대로 알고 익히고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힙한 리더가 되는 중요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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