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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매거진

당신을 위한 인문학 이야기

2021-03-08

 

 

 

배보경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멀리 떨어져서 본다면 경영은 경제학이나 공학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 경영 은 오히려 사람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또 진지하게 들여다보면 경영은 인문학이다." 

-≪경영이란 무엇인가≫ 조안 마그레타


경영經營의 한자를 풀어보면 '계획하여 다스린다'이다. 다스리는 대상은 소위 얘기하는 경영의 3요소인 물자, 자본, 사람이다. 그런데 이 3요소의 비중은 다르다. 사람 이 핵심이다. 인문학은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사람과 사람의 근원적인 문제, 사람들 이 만든 문화, 사람의 가치와 사람만이 가지는 자기표현 능력을 바르게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경영을 잘 하기 위해서는 필수이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 문학, 사학, 철학, , , , 악이다. 추상력을 연마하기 위한 이성적 훈련을 위해서는 문사철을, 감성적 훈련을 통한 상상력 연마는 시서화악이 도움을 준다. 경영현장에서는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집어내는 추상력과 사소한 문제 속에 담겨 있는 엄청난 의미를 읽어내는 상상력 모두가 필요하다.



데이빗 소로의 ≪월든≫: 나를 담담하게 들여다보기
해외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평범한 등장인물들이 인문학에 대한 식견이 매우 높음을 확인하며 놀란다. 그리고는 해외여행이 자유로웠던 시절을 떠올려본다. 기차와 공원에서 여유롭게 책을 보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뜨였다. 슬쩍 무엇을 읽고 있는지 곁눈질을 해 보면 소설이나 수필과 같은 문학 서적이었다. 어떤 이들의 책은 가죽 표지로 감싸져 있었다. 차림은 수수했지만 그들의 표정과 모습에서 품격과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경제적 순위나 상황의 변화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신을 굳건하게 붙들고 나름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듯한 모습이 편안해 보였다

70년대 후반 대학가에 타임지나 뉴스위크 지를 옆에 끼고 다니던 것처럼 인문학 바람이 불었을 때 경영자들은 ≪월든≫을 자주 입에 올렸다. 그리고 반경 1마일, 그러니까 1.6킬로미터 안에 이웃 하나 없는 외딴 숲에 손노동만으로 생계를 꾸리며 살아가는 소로우의 삶을 부러워했다

몇몇 경영인들과 함께 자기 성찰을 위해 공부를 시작하면서 ≪월든≫을 다시 펼쳤다. 간간이 귀감이 되는 문장에 줄을 그어 보지만 책을 읽어 내려가기는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했다. 간결한 표현이 사실적이어서 섬세했지만 '이것을 내가 왜 읽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를 담담하게 들여다보기에 아직 준비가 덜 됐던 것이다. 소로우의 표현처럼 '자기가 한 일로 얻은 평판, 즉 자기에 대한 자신의 평가에 얽매여 있는 노예이자 포로'였던 것이다. 눈은 책을 읽어 내려갔지만 나의 생각은 여전히 편견과 허상을 좇고 있었다

마음이 가는 부분이 아니라 해설을 비롯해 머리말부터 차례대로 온전히 몰입해 또다시 읽어 본다. 그냥 읽었다는 수준이 아니라 그가 왜 그렇게 표현을 했는지 생각하며, 나의 일상과 내가 접하는 자연의 모습을 그려 본다.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주워들은 이야기보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 꾸밈없고 진솔한 얘기가 더 소중하다'는 그의 주장이 월든 전체를 통해 흐르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인생이란 것은 자신이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하나의 실험'이라며 시선을 안으로 돌려 자신의 마음속에 발견되지 않은 자신만의 특별함을 찾기를 강조했다. 늦었지만 그래도 나를 담담하게 들여다보고 나의 특별함을 찾아보는 여행을 시도해 본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잠시 멈추고 숨 고르기 

"한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중요하고, 영원하고, 신성하다. 그들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중략…세계가 자기 안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면 한 그루 나무이거나 돌, 기껏해야 동물일 뿐이다. 그러나 알고자 하는 인식의 첫 불꽃이 희미하게 밝혀질 때, 그때 비로소 사람이 된다."

세계가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은 대단한 격려이다. 알고자 하면 이 가능성은 우리 자신의 것이 된다. 지식을 쌓아도, 경험을 해도 의문을 갖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거나 지니고만 있으면 소용이 없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얻어도 곧바로 날아가는 지식 습득에만 급급했다. 그리고 기대하던 바에 미치지 못하면 그냥 덮었다. 목적이 있었지만 진정으로 나 자신이 목적하는 바는 아니었다. 가야 할 곳이 정해져 있었기에 생각을 깊이 하지 않고 빨리 그곳에 가는 것이 중요했다. 정해진 것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모두 무시했었다. 너무 앞만 보고 달렸던 것이다. 이제 잠시 멈추고 숨 고르기를 해본다. 이 나이 되어서야 비로소 조금씩 사람이 되어 가고 있음이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만이 할 수 있는 나의 내면에 집중해보자 
버진그룹의 CEO인 리처드 브랜슨은 그가 쓴 두 권의 자서전 제목으로 '버진다움'을 채택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에만 집착했던 시절의 이야기는 '버진다움을 잃으며'로 붙였고, 2017년에 출간한 두 번째 자서전의 제목은 '버진다움을 찾아서'로 했다. 기업가로서의 삶이 진정한 성공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하는지 찾아냈던 것이다

"우리 모두는 좋은 시기와 나쁜 시기, 시험과 시련, 실패와 승리를 거친다. 단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한 계단을 오르고 나서 더욱 강한 모습으로 거듭나는 것뿐이다." 

그는 지금도 단계를 오르기 위해 날마다 버진다움을 찾고 있다고 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나의 내면이 요구하는 나에게 이제 제대로 충실해 본다. 접하는 것들을 그냥 넘기기보다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그래서 만들어지는 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는, 나만이 할 수 있는, 다음 단계로 건너간 '나 다운 나'이다. 니체는 길의 풀 하나도 거기에 있을 이유가 있다고 했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지 생각한다. 대신 머리로 들어온 내용이 가슴을 뛰게 하고 발까지 전해져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생생한 자연과 호흡하되 몸을 혹사하지 않기를 다짐한다. 그냥 지나친 고전을 다시 펼치면서 하루를 시작하며 매일 '나 다운 나'가 되기 위해 건너가기를 시도해 본다.

 

 

 




 

배보경 교수는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에서 조직행동론과 변화관리와 리더십을 강의하고 있으며 최고경영자과정 주임교수와 Executive Education Center 센터장을 맡고 있다. IGM 세계경영연구원 원장과 KAIST 경영대학 경영자과정 총괄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경력개발센터 부원장한국 아이비엠 조직문화프로그램 매니저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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