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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매거진

인공지능이 국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

2018-08-14


 

인공지능의 비약적인 발전이 노동시장에 가져올 변화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인공지능 구현을 위한 접근방법의 변화와 빅 데이터에 기반한 급진적인 기술적 성과들이 자동화가 가능한 업무의 경계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사람 고유의 일이라고 여겨졌던 일들이 점점 더 컴퓨터도 할 수 있는 일로 바뀌고 있다.

 

과거 자동화는 정형화된 업무에 국한
인공지능으로 비정형화된 업무도 대체 가능

과거 자동화는 명시적인 규칙에 기반하는 정형화된 업무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미국 MIT대학의 노동경제학자인 데이비드 오토David Autor 등이 2003년에 자동화에 따른 노동시장 영향의 분석틀을 제시한 바 있다. 이들은 모든 직업이 과업task의 묶음으로 구성됐다고 보고, 단순 반복적인 업무나 일정한 규칙을 따르는 업무가 많은 직업일수록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한 자동화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자동화할 수 있는 업무에는 장부 기록과 같은 정신노동뿐만 아니라 컴퓨터로 기계를 제어함으로써 대체 가능한 육체노동도 포함됐다.

 

반면, 명시적인 규칙을 따르지 않는 업무는 비정형화된 업무로 정의하고, 자동화가 어려운 것으로 간주했다. 자동차 운전이나 법률 문서 작성 등이 비정형화된 업무에 해당된다. 이러한 업무들은 사람의 경험과 훈련을 통해서 숙련도를 높일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컴퓨터 프로그램으로는 구현하기 힘들 것으로 봤다.

 

비정형화된 업무들의 자동화가 어려운 근거로 '폴라니 역설Polanyi's Paradox'이 제시된다. 폴라니의 역설은 "사람은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We know more than we can tell"로 요약할 수 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은 명시적인 규칙으로 컴퓨터를 학습시키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자동차 운전과 같이 경험을 통해서 학습하고 상황에 따라 판단해 대처하는 업무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작성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왔다.

폴라니 역설은 오랫동안 인공지능 연구자들의 발목을 잡아왔다. 그러나 현재의 인공지능 기술은 폴라니의 역설을 우회함으로써 자동화 가능한 업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컴퓨터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데이터를 학습하고 스스로 알고리즘을 개선해 나가면서 사람과 마찬가지로 경험을 통한 지식 습득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일자리 대체에 대한 연구 결과 엇갈려

최근 들어 경제학자 사이에서도 인공지능이 중요한 화두로 등장했다. 인공지능이 일자리에 미칠 영향에 대한 논의는 2013년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경제학자 프레이C. Frey 교수와 인공 지능 전문가 오스본M. Osborne 교수의 연구 이후 본격화됐다(이하 프레이&오스본). 이들의 연구는 데이비드 오토 등이 선구적으로 연구한 정형화 업무와 비정형화 업무의 분석틀을 이용하되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대부분의 비정형화된 업무도 컴퓨터로 대체될 수 있다고 본 것이 핵심적인 관점의 변화다. 이들은 10~20년 후에도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힘든 업무를 창의적 지능Creative Intelligence, 사회적 지능Social Intelligence, 감지 및 조작Perception and Manipulation 등 3가지 병목bottleneck 업무로 국한시키고, 이를 미국 직업정보시스템O*Net에서 조사하는 9개 직능 변수를 이용해 정량화했다. 직업별로 3가지 병목 업무의 비중에 따라서 인공지능에 의한 대체정도가 달라진다고 본 것이다. 프레이&오스본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노동시장 일자리의 47%가 향후 10~20년 후에 인공지능에 의해서 자동화될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군으로 나타났다.

 

인공지능의 급격한 발전 속도를 고려한다면 자동화 위험이 높은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많은 연구자들이 인공지능이 고용에 미칠 영향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인공지능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내겠지만 기존 일자리가 사라지는 과정에서 직업이동이 어려운 근로자들의 경제적 충격이 심화되고, 경제 전반의 양극화 문제를 확산시킬 수 있다. 따라서 비관적인 상황에서도 노동시장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정책과 제도를 고민하는 것이 인공지능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최소화하고, 기술적인 이점을 누릴 수 있는 방향이 될 수 있다.

 

 

 

인공지능이 우리나라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

인공지능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예측한 프레이&오스본의 연구를 국내 노동시장에 적용해 봤다. 미국 직업 기준으로 도출한 직업별 대체확률을 우리나라 직업분류코드에 매칭시켜 우리나라 일자리의 대체확률을 구한 다음, 최신 고용데이터를 이용해 인공지능에 의한 자동화 위험에 노출된 일자리의 분포와 특성을 분석했다.

 

자동화 위험은 직업별로 다양하게 분포

프레이&오스본에서 도출한 직업별 대체확률을 우리나라 직업별로 변환해 423개 직업(세 분류 기준)의 대체확률 분포를 확인했다. '관리자'와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의 경우 대체확률이 낮은 부분에 직업들이 많이 분포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관리자와는 달리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 중에서는 대체확률이 1.0에 가까운 직업들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무 종사자'와 '판매 종사자' '장치-기계조작 및 조립 종사자'의 경우 예외적인 몇 개의 직업을 제외하면 대부분 직업의 대체확률이 0.5 이상을 넘어섰다. 이들 세 직업의 평균 대체확률은 0.8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농림어업 숙련 종사자'의 경우는 대체확률이 0.5~0.8 사이에 몰려 있는 것으로 나타나며, '서비스 종사자'와 '기능원 및 관련 기능 종사자'의 경우에는 대체확률이 비교적 고르게 분포했다.

 

인공지능에 의한 자동화 위험이 가장 높은 직업은 통신 서비스 판매원, 텔레마케터, 인터넷 판매원 등과 같이 온라인을 통한 판매를 주요 업무로 하는 직업들이다. 관세사, 회계사와 세무사 등도 자동화 위험이 높은 상위 20대 직업에 포함되어 있어 전문직에서도 업무에 따라서는 인공지능에 의한 자동화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인공지능에 의해서 대체되기 힘든 직업은 보건, 교육, 연구 등 사람간의 상호 의사소통이나 고도의 지적 능력이 필요한 직업이었다. 특히, 영양사(대체확률 0.004), 의사(0.004), 교육 관련 전문가(0.004), 성직자(0.017), 공학 기술자 및 연구원(0.017) 등이 매우 낮은 수준의 대체확률을 보였다.

 

사무-판매-기계조작 등이 고위험 일자리 72% 차지

우리나라 직업을 기준으로 전환한 직업별 대체확률을 국내 고용데이터와 결합해 분석해 보면 자동화 위험에 따라 얼마나 많은 일자리들이 분포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고용 데이터로는 지역별 고용조사의 최신 마이크로 데이터(2017년 상반기)를 이용했다. 지역별 고용조사는 전국 약 20만 가구를 표본으로 조사하는 통계로 직업별, 산업별로 소분류 기준으로 상세한 고용현황을 파악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화이트 칼라'를 상징했던 사무 종사자의 업무는 인공지능 기술 확산에 따른 로보틱 프로세스 자동화Robotic Process Automation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될 것이다. 최근 인공지능을 이용한 가상의 비즈니스 로봇이 서류 분석, 보고서 작성, 메일 회신, 인사 채용, 성과 지급 등을 자동화하는 로보틱 프로세스 자동화(RPA) 솔루션을 도입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IBM은 기업 사무직 업무의 63%가 RPA로 대체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RPA를 도입한 기업들은 기존의 인력들을 감축하거나 보다 창의적이 고부가가치가 높은 업무로 새롭게 배치할 유인이 높기 때문에 직능 향상을 위한 재교육 프로그램, 이직 및 전직 지원 프로그램 등에 대한 수요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판매 종사자는 306만 명 중 78%(238만 명)가 고위험군으로 나타났다. 매장 판매 종사자(197만 명), 방문노점 및 통신 판매 관련 종사자(38만 명)들이 고위험군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발전에 따라 '아마존 고Amazon Go'와 같은 무인 매장이 확대되고, '챗봇' '인공지능 상담원' 등이 콜센터의 고객 상담 업무를 대신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이다.

기계 조작 종사자는 산업용 기계 조작이나 컴퓨터를 이용한 기계제어, 운송장비 운전 등의 작업을 하는 이른바 '블루칼라' 종사자들이다. 운전관련 직업은 중위험군인데 반해서, 기계 조작 및 제어, 조립에 해당하는 185만 명(기계 조작 종사자의 59%)이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점점 더 많은 제조업 공정이 인공지능으로 제어되는 스마트 팩토리로 진화해 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제조업 자동화로 조작 및 조립 종사자에 대한 기업의 수요가 감소하는 대신 스마트 팩토리 운영에 필요한 인공지능, IoT, 클라우드 컴퓨팅 등과 관련된 지식 중심 노동 수요가 늘어날 전망이다.

 

서비스업의 원격 공급 확대로 일자리 해외유출 우려

주요국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무인화 바람은 앞으로 지역 상권의 일자리를 위협할 주요 원천이 될 것이다. 이미 미국의 오프라인 유통 사업자들은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에 밀려 파산하거나 사업 규모를 축소하고 있다. 아마존은 인공지능을 이용한 상품 추천, 로봇을 이용한 창고 자동화 등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서 유통업을 장악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아마존 고Amazon Go, 드론 배송 등 무인 매장, 무인 배송 서비스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 중이다. 중국에서도 '신소매 유통'이라고 불리는 오프라인 매장의 디지털화가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24시간 무인 편의점인 '빙고박스BingoBox'를 비롯해, 알리바바의 '타오카페Tao Cafe', 식품업체 와하하의 '테이크 고Take Go' 등 온라인,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다양한 유통업체들이 무인점포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국내에서도 무인 편의점이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고, 스마트폰 간편 주문 및 결제, 키오스크 등을 통해서 서비스 업무를 자동화하는 범위가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

 

서비스업의 자동화가 확산되면 교역이 제한적이었던 서비스도 교역재의 성격을 가지게 된다. 서비스의 전달과정에서 최종 고객과의 접점이 되는 컴퓨터나 스마트폰, 서비스 로봇 등을 제어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과 데이터는 인터넷을 통해서 어디에서든 공급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점점 더 확대되고 있는 디지털 무역Digital trade이 내수 서비스 산업에도 유의미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역 상권 종사자의 경쟁자가 시외나 해외에서도 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프라인 매장의 무인화는 안면인식 기술과 같은 인공지능과 스마트폰을 이용한 모바일 결제 등이 결합된 무인점포 솔루션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디지털 솔루션들은 기존 클라우드 서비스와 같이 해외에 위치한 서버를 통해서도 원격으로 공급될 수 있다. 오프라인 매장의 무인화는 지역 매장에 종사하는 취업자들의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동시에, 대체 서비스의 공급이 해외에서 이루어는 경우에는 일자리 유출이 발생하는 효과도 나타날 수 있다.

 

미래 일자리 변화의 의미와 시사점

인공지능에 의한 자동화의 물결은 아직 초기 단계이다. 무인 매장, 무인 창고 등 일부 산업에서는 서서히 현실화되는 조짐이 관찰되고 있지만, 산업 전반에서 인공지능의 상용화는 아직 멀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인공지능의 비약적인 발전 속도를 고려한다면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미 기존 산업계의 이슈가 되고 있는 '우버화Uberization' 1)나 '아마존 효과Amazon Effect' 2)의 기저에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상품을 추천하거나 수요자와 공급자를 매칭하고, 수요를 예측하는 머신러닝 알고리즘의 활용이 자리 잡고 있다. 앞으로 영상인식, 음성인식, 자연어처리 등의 발전과 함께 인공지능이 IoT(사물인터넷), 로봇 등과 결합하게 되면 인공지능의 도입이 산업 전반으로 확산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우리나라 일자리에 미칠 영향을 분석해 본 결과 우리나라 일자리의 43%가 자동화될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군으로 나타났다. 특히 3대 고위험 직업과 3대 고위험 산업에 인공지능에 의한 자동화로 대체 가능성이 높은 취업자가 60% 이상 몰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적으로 자동화의 영향이 컸던 제조업, 블루칼라 근로자뿐만 아니라 화이트칼라 근로자나 지역 상권의 서비스업 일자리도 인공지능에 의한 자동화에 크게 노출돼 있다.

 

인공지능에 의한 자동화 위험이 특정 직업이나 산업, 계층에 집중된 것은 앞으로 중요한 도전과제가 될 수 있다. 대규모 구조적 실업이 특정 직업과 산업에서 나타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산업들이 탄생해 양질의 일자리들이 창출될 경우에도 한편에서는 실업, 양극화 문제가 부각되면서 사회적 비용이 확대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비교역재로 인식됐던 서비스가 인터넷을 통해서 원격으로 공급되면서 일자리를 대체할 경우 '디지털 무역'이 통상 갈등의 요인으로 급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인공지능의 확산이 점점 더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개인들은 인공지능을 업무에 보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직업 능력을 개발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 있을 인간 고유의 능력은 향후에는 더욱 귀한 자원이 될 것이다. 프레이&오스본의 연구에서 병목 업무로 상정한 창의력, 대인관계 역량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고유의 능력에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결합한다면 인공지능 시대에도 여전히 각광받는 직업을 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은 인공지능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조직 구조를 마련해 나갈 필요가 있다. 컴퓨터의 학습에 활용될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한 기업들이 인공지능을 무기 삼아 이종 산업에 진출함으로써 '아마존 효과'가 유통업과 관련 없는 산업에도 언제든지 확산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간의 명암이 더욱 뚜렷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 기반의 업무 자동화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인력 구성과 배치가 필요하다. 나아가 미국 IT기업 델 창업자인 마이클 델 회장이 직관적으로 표현했듯이 "인공지능이 로켓이라면 데이터는 이를 추진하는 연료"이다. 인공지능 활용에 필수적인 데이터 확보에 대한 고민도 선행돼야 한다.

 

정부는 고용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감안해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Flexicurity 제고에 나서야 한다. 산업의 변화에 대응해 다양한 고용형태와 탄력적인 인력운용이 가능한 유연한 노동시장을 마련함과 동시에 취약계층의 일자리 충격을 흡수할 수 있도록 재교육, 전직 지원, 고용 보 험 등 사회안전망도 강화해 나가야 한다. 나아가 기본소득, 로봇세(자동화세) 등 기술 혁신에 대응해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정책 담론에 대한 선제적 검토와 정책 실험을 통해서 일자리 상실에 대한 불확실성을 완화시켜 나가야하며, 지식 수명주기의 단축에 대응할 수 있는 평생 학습 체제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김건우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