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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중반까지 인재선발의 주된 수단은 지능검사와 학업성적이었다. 개인의 지적 능력이 직무 성과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는 전제에 누구도 쉽게 의문을 제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고도로 발달하기 시작한 정부 조직과 기업 현장에서는, 고지능자라고 해서 반드시 우수한 직무성과를 내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평균 이하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사례도 빈번히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기존 평가 도구의 예측 타당성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켰고, 더 실전적이고 타당한 평가 기준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1973년, 데이비드 맥클리랜드는 「Testing for Competence Rather Than for Intelligence」라는 논문을 통해 전통적인 지능검사와 학업 성적 중심의 선발 방식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실제로 직무에서 고성과를 내는 사람들의 공통된 행동 특성과 내적 동기를 분석하여, 이를 ‘역량(competency)’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하였다. 이후 리처드 보이애치스는 직무 성과를 기준으로 역량 요소를 체계화하고, 이를 모델화하여 조직 내 선발, 배치, 평가에 적용하는 틀을 마련했다.
역량기반 평가 방식은 특정 직무 상황에서 발휘되는 실제 행동에 주목하며, 면접, 상황판단검사, 모의과제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적용된다. 이 방식은 지능검사에 비해 문화적 편향이 적고, 직무성과와의 상관성이 높다는 점에서 그 타당성이 인정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인재선발의 기준은 지능 중심에서 행동과 성과 중심의 역량기반 방식으로 전환되었으며, 이는 오늘날 기업과 공공기관의 채용 방식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역량, 성과를 만드는 내면의 특성
역량 기반 평가의 확산은 단지 평가 방식의 전환에 그치지 않고, 역량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이해의 전제 위에서만 유효하게 작동한다. 통상적으로 역량이란 말은 개인이나 조직이 가진 능력을 멋스럽게 표현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애초에 그게 사전적 의미니까. 그러나 경영학, 그 중에서도 인사조직 분야에서 'Competency'의 번역어로 사용되고 있는 ‘역량’은 그보다 구체적이고 제한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단순히 드러나는 능력이 아니라, 탁월한 성과를 일관되게 만들어내는 개인 내면의 심층적 특성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평균 이상의 성과를 내는 집단을 분석하여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심리적, 행동적 특성을 추출한 것이 역량이다.
예를 들어 ‘성취지향성(Achievement Orientation)’이라는 역량은 단순히 일을 잘하고자 하는 의지가 아니라, 남이 부여한 기준을 넘어서는 높은 목표를 스스로 설정하고자 하는 경향성을 포함한다. 역량 개념을 정립한 연구들에 따르면, 고성과자들은 외부에서 부여한 목표와 무관하게 '난 그보다는 더 많이 해보이겠어'하면서 스스로 납득이 되는 목표를 따로 세우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이런 특성을 평가가 가능하도록 축약하여 정리하면 '주어진 목표 수준보다 더 높은 목표를 스스로 설정한다'와 같이 기술할 수 있다. 이렇게 공통적으로 발견된 특성들이 하나하나의 '역량 요소'로 명명되어 현재 많은 선진국들의 정부 조직과 글로벌 기업에서 선발 및 평가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역량을 평가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그 사람의 내면적 성향을 확인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에, 말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따라서 역량기반 면접에서는 과거 실제 경험을 중심으로 질문을 구성한다.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이나 가치관을 묻는 질문은 면접자의 말솜씨에 따라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으므로, 평가의 실효성이 낮다. 마찬가지로 “만약 어떤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가상 상황형 질문 역시, 역량의 유무보다는 화자의 언어적 유창성만을 드러내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과거 행동을 통한 증거 기반의 평가
가장 널리 쓰이는 질문은 다음과 같은 형태다. “살면서 경험한 가장 어렵거나 힘들었던 일을 제시하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설명하라.” 이는 입구 질문(entrance question)으로, 면접관은 이후 추가 질문을 통해 사건의 맥락, 구체적 행동, 의사결정의 근거 등을 추적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므로, 실제 면접 시간의 제약 속에서는 ‘타겟형 질문(targeted question)’이 활용된다. 예컨대 “당신이 과거에 창의력을 발휘했다고 느꼈던 경험이 있다면, 그 사례를 말해보라”는 식이다.
이런 질문에 실제 창의성 역량을 가진 사람은 자극적이고 과장된 이야기를 꾸며내기보다는, 구체적인 일상 속 행동을 진지하게 풀어낸다. 위와 같은 질문에 실제로 창의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렇게 답할 수 있다.
"이게 창의성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 삼촌 가게 앞에 소화전이 하나 있었거든요? 그런데 거기에 누가 자꾸 자전거를 매어놔서 곤란했던 적이 있었어요. 소화전에 뭐가 매달려있으면 나중에 불이 나면 큰일나잖아요. 그래서 경고문도 붙여보고, 자물쇠를 억지로 뜯어내고 해도 소용이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삼촌한테 그 소화전 옆에 단단한 막대 같은 걸 하나 묻으면 어떠냐고 했죠. 그 말을 듣고 삼촌이 U자형으로 된 쇠파이프를 구해다가 거꾸로 묻고 콘크리트로 고정했어요. 그 이후로 사람들이 쇠파이프에 자전거를 걸고 소화전은 그냥 두더라고요."
이러한 답변은 응답자의 경험 속에서 드러나는 높은 수준의 창의성(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평가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이 역량 요소가 크지 않은 사람의 경우 이러한 사례를 미리 준비하기도 어렵고, 거짓으로 꾸며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이런 게 즉석에서 가능하다면, 다른 의미로 ‘대단한 인재’일 것이다). 이처럼 역량은 단순히 ‘창의적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자기진술이 아니라, 과거 실제 행동의 재구성을 통해서만 평가가 가능하다.
역량평가란 과거 행동에 기반한 증거 수집의 과정이다. 질문을 잘 구성하고, 응답자의 경험을 깊이 있게 탐색할 수 있는 면접관의 훈련도 필수적이다. 역량이란 말이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 실질적인 선발 도구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그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평가기법의 정교함이 전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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