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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매거진

슈퍼 마리오에서 배우는 직장인의 마음가짐 [더플랩]

2022-11-24

동키콩에서의 마리오(흰 원 안). 참고로 노란 원 안 캐릭터는 마리오 시리즈의 히로인으로 유명한 ‘피치 공주’가 아닌 ‘폴린’이라는 캐릭터라 합니다. 피치 공주는 1985년 ‘슈퍼 마리오브라더스’에서야 데뷔를 했거든요./닌텐도

지난 7월 9일부로 일본 비디오 게임 회사 닌텐도의 간판 캐릭터인 마리오가 출생 40주년을 맞았습니다. 1981년 7월 9일에 출시한 게임 ‘동키콩’에서 커리어 첫걸음을 뗄 땐 공식 이름조차 없는 조연에 불과했지만, 강산이 네 차례 바뀐 지금은 닌텐도는 물론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 중 하나로 손꼽히며 전 세계에 이름을 날리는 슈퍼스타 반열까지 올라섰죠.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2016년 리우올림픽 폐회식에서 마리오 분장을 하고서 등장했던, 이른바 아베 마리오 퍼포먼스만 봐도 마리오의 문화적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죠./Olympic Channel 캡처

그런데 게임만으로도 작품이 200개 이상 출시됐던 이 마리오 시리즈엔, 조금은 기묘한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게임 스타일이나 시나리오 전개상 필요에 따라 신규 캐릭터를 투입 혹은 제외하는 데에 달리 망설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게 뭐라고 특색씩이나 되냐 싶을 수도 있지만, 사실 이는 게임뿐 아니라 창작물 전반에선 의외로 중요한 문제이긴 합니다. 캐릭터의 등장과 소멸은 세계관과 시나리오의 설정 짜임새에 상당한 부담을 주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삼국지연의에서 가상의 인물인 주창을 삭제하고 시나리오를 전개하겠다 작정하면, 단지 그것 하나만으로도 다시 쓰거나 보정해야 할 부분이 한둘이 아니겠죠?

연의뿐 아니라 삼국지 관련 창작물 대다수에 이미 주창이라는 캐릭터가 깊이 녹아 들어가 있는데, 갑자기 그의 존재를 없애면 재정비에 상당한 공력이 들 수밖에 없겠죠./코에이 테크모 게임 ‘진삼국무쌍 8’ 캡처

그럼에도 닌텐도는 캐릭터를 넣고 빼는 데에 대체로 거침이 없습니다. 이를테면 마리오 파티 시리즈에 등장했던 ‘쿠파 키드’는 슈퍼 마리오 시리즈에 ‘쿠파주니어’가 나타난 이래 소리소문없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고요. 피치 공주의 집사라는 설정이 있었던 ‘키노영감’도 슈퍼 마리오 선샤인과 마리오&루이지 RPG 시리즈 등에만 간간이 얼굴을 비추다 슬그머니 잊혀졌습니다.

존재감이 옅거나 선호도가 부족했던 캐릭터만 슬쩍 거르는 것도 아닙니다. 2000년 작품인 마리오 테니스 64부터 등장한 ‘와루이지’는 북미권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었으나, 닌텐도 소속 주요 캐릭터를 한데 모은 격투 게임인 ‘슈퍼 스매시브라더스 얼티밋’에 참전하지 못하는 홀대를 당합니다. 심지어 닌텐도가 공식적으로 ‘전원 참전!’을 선언했는데도 말이죠.

모두 참전한다며!/닌텐도, ‘GenjiShitmada’ 트위터 캡처

인물, 사건, 배경이 정교하게 맞물리는 탄탄한 설정은 창작물에 상당한 매력과 힘을 불어넣어 줍니다. 개연성이 충분히 확보되며 작품의 흡인력이 배가되는 것은 물론, 가끔은 설정 그 자체가 스토리에 소재를 공급하는 원동력이 되기까지도 하죠. 실제로 움베르토 에코나 J. R. R. 톨킨은 집필에 앞서 세계관을 세밀하게 짜 둔 덕에 이야기가 장편으로 이어지는 판국에도 내내 핍진성과 설득력을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반대로 미리 섬세하게 구축해 둔 설정이 도리어 작품의 전개를 방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계관 구성이 정밀하면 오히려 새 국면으로 확장을 도모하거나 유연하게 방향을 틀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것이죠.

가령 J. K. 롤링이 집필한 ‘해리 포터 시리즈’를 보면 볼드모트 경이 마법 세계 전체를 공포에 몰아넣었다고 묘사되지만, 훗날 프리퀄인 ‘신비한 동물사전’에서 마법사 사회가 전 세계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영국 바깥에선 거의 영향이 없었던 안방 챔피언으로 위상이 격하됐죠. 자연히 독자에게 와 닿는 볼드모트의 위신과 카리스마에도 어느 정도는 손상이 발생했고요. 또한 동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이 반영됐다는 의혹이 불거진 캐릭터 초 챙은, 논쟁이 한창이던 시점에 이미 시나리오상 중요한 조연이 돼 있었는지라 슬쩍 하차시키거나 존재를 부정하기가 난감했죠.

해리 포터 실사 영화 시리즈에 묘사된 볼드모트 경./네이버 영화

창작물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종종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곤 합니다. 예를 들어 제1차 세계 대전 초반 독일 제국군이 룩셈부르크 진격에 나섰던 1914년 8월 1일 저녁, 빌헬름 2세는 “아직 타협의 여지가 있다, 군대를 멈춰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당시 참모총장이었던 소(小) 몰트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되돌릴 수 없습니다, 일단 정하면 바꿀 수 없습니다.”

선대 참모총장인 알프레트 폰 슐리펜이 작성해 소 몰트케가 수정한 전쟁 계획인 ‘슐리펜 계획’은 굉장히 정교하고 치밀한 작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전에 돌입하자 그 고도의 정밀함이 오히려 문제가 됐습니다. 변수가 조금만 발생해도 전체가 영향을 받으며 어그러지는 탓에 상황 변화에 유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황제의 뜻과는 별개로 슐리펜 계획을 밀어붙이고 싶었던 소 몰트케의 속내도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중도에 계획을 틀었다간 명령이 엉키며 독일 제국군 전체가 공격도 방어도 제대로 하지 못할 마비 상태에 처하게 될 것 또한 사실이었다 합니다.

이들과는 달리 세계관의 짜임새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고 설정에도 그다지 연연하지 않았던 닌텐도의 관리 전략은, 결과적으론 마리오 시리즈가 엄청난 확장성과 유연성을 발휘하며 다양한 장르에서 전 세계 게이머를 사로잡는 데에 상당한 기여를 했습니다.

확장성의 사례로는 2001년 작품인 ‘루이지 맨션’을 들 수 있는데요. 점프 앤 런 스타일인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시리즈와는 달리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었던 ‘루이지 맨션’엔 진행을 위한 조력자가 필요했고, 닌텐도는 이를 위해 별다른 전후 맥락 설명 없이 ‘아라따 박사’를 신규 투입합니다. 버섯 왕국에 거주하는 천재 박사라는 설정이 있는 캐릭터였는데요.

치밀한 설정을 추구했다면 앞서 출시된 시리즈에선 왜 아라따 박사가 과학의 막강한 힘으로 마리오를 지원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향후 출시될 시리즈에선 그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충분히 설명하고 반영해야 했겠죠. 하지만 닌텐도는 개연성에 신경 쓰다 시리즈 전체가 꼬이는 상황 대신 설정 오류나 충돌을 감수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럼에도 마리오 시리즈 사상 첫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었던 ‘루이지 맨션’은 게임성이 뛰어나 상당한 호평을 받았고, 그 덕에 설정상 허점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난히 장르의 저변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아라따 박사가 발명한 ‘유령싹싹’이 있는데 왜 마리오는 부끄부끄(유령 캐릭터)를 피해 다니거나 펀치 혹은 킥으로 때려잡나요?” 같은 질문에, 닌텐도는 일일이 답하지 않는다는 것이죠./닌텐도

유연성 측면에선 ‘요정 공주’를 들 수 있습니다. 2013년에 출시된 ‘슈퍼 마리오 3D 월드’에선 이전까지 붙잡힌 히로인이었던 피치 공주가 모험에 참여하는 조작 가능 캐릭터로 참전했는데요. 그 때문에 납치당하는 역할을 대신 맡은 신규 캐릭터가 바로 요정 공주였습니다.

전직 인질이 모험가로 바뀌는 상당한 설정 변주가 있었음에도 닌텐도는 배경 상황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곁들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쿠파가 피치 공주는 제쳐두고라도 요정 공주를 무슨 필요와 용도로 붙잡았는지조차 분명히 밝힌 바가 없었습니다.

잡아갈 때 잡아가더라도 이유는 알려 주고 가!/닌텐도

하지만 이처럼 설정 구성이 엉성했던 덕에, 도리어 차기작인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에선 기존 설정을 재구성하는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피치 공주를 인질로 되돌릴 수 있었습니다. 반면 요정 공주는 자취를 감추며 없던 것과 마찬가지인 캐릭터가 돼 버렸고요. 세세한 설정을 버린 대신 제작진의 판단과 게임 장르 및 분위기에 따라 자유롭게 선회 가능한 유연성을 얻은 셈이죠.

서두가 꽤 길고 장황했습니다만, 사실 진정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직장 생활을 하거나 업무 전략을 수립하는 데 있어 ‘완벽주의가 늘 정답은 아니다’는 것입니다.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마리오 시리즈는 세계관 정리에 열의를 보이지 않고 꼬여 있거나 중구난방인 설정을 방치한 탓에 게이머들로부터 적잖이 허점도 많고 무성의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설정 충돌이나 오류에 얽매이지 않은 덕에 거침없이 새로운 시나리오를 전개하거나 장르를 변경하며 소비층의 니즈와 트렌드에 유연한 자세로 발맞추며 승승장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지나친 방만도 문제인지라 닌텐도 측에서도 최근엔 어느 정도는 마리오 시리즈의 세계관을 정리하기 시작했지만, 아무튼 시리즈 성장을 부스팅하는 과정에선 설정에 집착하지 않았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된 것만큼은 사실이죠.

이와 같은 닌텐도의 사례와는 반대로, 한국의 직장인들은 대체로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한 편입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가 이끄는 상담심리학교실 연구팀이 한국인 성인(20세~60세) 511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53.62%가 완벽주의 성향을 품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완벽주의 성향에 따라 정교하게 잘 짜여진 플랜은, 예측대로 굴러갈 땐 당연히 별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잘 맞물린 기획은 세부 말단에서 조금만 어긋나도 전체에 영향을 끼치며 프로젝트를 총체적으로 뒤흔드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그리고 직장에서 추진하는 업무 대부분은 적어도 한두 번쯤은 돌발 상황에 봉착하기 마련이죠. 독일 제국의 명장 대(大) 몰트케가 공연히 “아무리 훌륭한 전투 계획이라도 첫 포성이 울리는 순간 휴짓조각이 된다”며 예측의 어려움과 임기응변의 중요성을 역설했던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은 있다. 주둥이에 한대 처 맞기 전까지는.”/마이크 타이슨 인스타그램

게다가 이러한 완벽주의 성향인 직장인이 기업에서 높은 평가를 받느냐 하면, 반드시 그렇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사람인이 지난 2014년 기업 인사담당자 210명을 대상으로 ‘자기소개서에서 봤을 때 비호감을 느끼는 단어’를 설문한 결과 1위로 꼽힌 것이 바로 ‘완벽주의’(41.9%)였습니다. 뒤를 이은 단어는 '최고의'(27.6%), '냉철한'(25.2%), '국제적인'(14.3%), '헌신적인'(13.3%), '현실적인'(11.9%), '자기계발적인'(9%) 등이었습니다. 사람인 관계자는 “완벽주의엔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지만, 완벽을 도모하다 도전조차 하지 않는다거나 결과를 쉽게 수용하지 못한다는 점이 인사담당자에게는 부정적으로 다가온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니 실제 프로젝트가 진행되기에 앞서 모든 상황과 변수를 예측해 완벽한 플랜을 짜 두려는 강박을 지닐 필요까진 없을 듯합니다. 마리오 시리즈처럼 제약을 넘어 자유롭고 유연하게 뻗어 나갈 수 있는 여지를 스스로 제한하는 꼴이 될뿐더러, 직장에서도 실제론 그다지 호감을 사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컨설턴트인 제리 마나스가 저서 ‘Napoleon on Project Management: Timeless Lessons in Planning, Execution, and Leadership’에서, 나폴레옹의 리더십 원칙 6가지 중 하나를 정리한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유동적이지 않은 계획은 쓸모가 없다.”

물론 계획 자체가 전혀 쓸모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미국의 위대한 리더 중 한 명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계획대로 승리한 전투는 없지만, 계획 없이 승리한 전투도 없다.” 어디까지나 적절함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백악관 공식 초상화

/사람인 HR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