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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간 팬데믹은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 기업의 경영환경과 인재채용 및 관리 측면에서 매우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언택트 환경에서도 내부 협업과 고객 접촉이 큰 무리없이 돌아갈 수 있음을 확인했고, 급속한 디지털 전환 추세는 기업들의 전통적인 영업 프로세스를 뒤흔들었다. 팬데믹 시기 펼쳐졌던 경기 부양 정책의 여파로 고물가, 고금리의 복합 경제위기가 나타났고 곧바로 동유럽 지역에서 전쟁이 터지면서 경제 환경은 대격변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최소 2024년 상반기까지 시장 위축과 그에 대비한 체질 혁신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인재 확보전략도 호황기처럼 우수한 인재를 유인하여 대거 합류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소수의 핵심 인재를 영입 또는 재배치를 통해 조직을 강화시키는 방식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몇 년 사이 찾아온 대이직시대는 인재들의 잦은 퇴직과 이동을 뉴노멀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우수 인재를 채용하고 좋은 대우를 하더라도 그가 오래 근무할 것이라는 기대는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오히려 중책을 맡은 리더가 언제든 이직하더라도 팀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계획을 짜야한다. 천재지변인 지진은 막을 수 없으니 높은 수준의 내진설계에 힘써야 하는 것과 같다. 경기 중 선발 선수가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나간다고 해도 곧바로 후보 선수가 투입돼서 전체적인 흐름을 흔들림 없이 잡아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석세서(Successor) 프로그램이다.
글로벌 생활용품 브랜드 P&G(Procter & Gamble)는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석세서 프로그램으로도 널리 알려져있다. 수많은 산하 브랜드와 방대한 생산 규모, 글로벌 사업 범위를 감안할 때 한 명의 리더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직무 경험과 영업 전략, 의사결정의 기회가 필요하다. P&G의 최고 경영진은 일반적으로 회사 내에서 승진을 통해 발탁하며 내부의 학습팀은 정규 학습과 다양한 직무 경험을 통해 30년에 걸쳐 리더를 육성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또한 직무마다 석세서 프로그램을 관리하기 위한 정교한 전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일부 핵심 경영진이 떠나더라도 남아 있는 임원들 중에서 신속하게 차기 인재가 선발된다.
그러나 이러한 강력한 프로그램을 갖춘 P&G도 실패를 한 적이 있다. 2013년 당시 CEO였던 로버트 맥도널드(Robert McDonald)가 퇴사하고 전 CEO였던 래플리(A. G. Lafley)가 다시 돌아온 사건이다. 현 CEO가 물러나고 전 CEO가 다시 돌아오는 게 뭐 대단한 일인가 하겠지만, 물러난 맥도널드는 바로 래플리가 직접 멘토를 맡아 발탁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맥도널드는 경기 침체로 인해 위축된 프리미엄 브랜드의 실적을 회복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사회는 4년 만에 그를 내보내고 그의 ‘상사’를 다시 회사로 복귀시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즉 당시 P&G에는 현 CEO를 승계할만한 후보자가 내부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체계적인 준비를 통해 완성도 높고 정교한 경영 승계를 해왔던 P&G였기에 이 사태는 재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졌다.
/게티이미지뱅크
석세서 프로그램은 기업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를 육성하고, 고위 경영진의 자리를 승계할 때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이다. 바람직한 후계자 선발은 개발과 육성, 평가를 통해 진행하며 기업의 특성과 상황을 고려하여 적절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해야 한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직원들의 기술과 전략 개발을 촉진하고 경영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내는데, Google Next, Apple University, Amazon Leadership Program, Microsoft Ignite 등이 있다. 이러한 이벤트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가 발굴되고, 구성원들은 창의적인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 등을 습득해 성장할 수 있다.
석세서 프로그램에서 필요한 경우 평가와 검증을 통해 내부 후보군을 만들어 두기도 한다. 주요 보직에 언제나 2명 이상의 후보자를 내정해 두고, 누가 불시에 나가도 대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미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 중에서 선발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본 업무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대상 후보들 간의 경쟁과 협력을 유도해야 한다. 후보 선발 프로세스가 지나치게 부각되면 경쟁이 과열되고, 조직의 안정성을 위해 시행하는 제도가 오히려 내부 협력을 저해하고 사일로 효과를 극대화시켜 업무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기 위해 자신의 역량 향상에만 몰두하여 현업의 문제를 좌시하여 갈등이 발생할 수 있으며, 심한 경우 경쟁에서 탈락한 리더가 휘하 팀원들을 이끌고 단체 이탈하기도 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인사부서에서는 사전에 정교한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주요 포지션마다 상시 대체 인력을 염두에 두고 적절한 검증도구를 활용하여 후보군을 확보하되, 이러한 과정이 불필요하게 유출되거나 오히려 경쟁을 자극하는 도구로 쓰이지 않도록 해야한다. 조용하지만 확실한 ‘플랜B’로서 미리 준비해 놓는다면 조직 안정성을 높이고 리더십 공백에 따른 비효율을 최소화할 수 있다.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과 경험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리더십과 성과를 검토하고, 인터뷰와 검증도구를 통해 가능성을 확인해야 한다. 또한 밀접하게 근무했던 동료들의 평가를 참고할 수도 있다. 그리고 평소 나타나는 윤리적 행동과 태도를 확인하고, 회사의 전략적 방향성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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