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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 매거진

40/52 근로시간제 HRD 이슈의 본질은 무엇인가

2018-10-22



고등학생이 학생으로서의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인다고 공부하는 '방법'은 그대로 두고 단순히 '시간'을 줄였다고 생각해보자. 즉, 12시간씩 공부하던 것을 법정노동시간인 8시간으로 줄였다면? 당연히 시험 성적은 떨어질 것이다. 결국 이 학생의 장기적 삶의 질도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범위 밖으로 곤두박질할 것이다. 그리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원래 방식으로 복귀하게 될 것이다. 문제의 해결을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의 수준에서 풀었기 때문이다.


40/52시간 근무제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런 철학 없이 법적 제재를 피하기 위해 근로시간만을  단축할 경우 생산할 수 있는 가치는 그만큼 감소될 것이고 결국 가치가 창출되지 못한다면 회사는 빈곤의 악순환을 반복하기 시작할 것이다. 결국 40/52시간제도 경쟁력 있는 생산성을 가진 소수의 기업들이 자신의 지위를 공고하기 위한 사치품으로 전락한다. 생산성이 받쳐주지 못하는 나머지 기업들에게 40/52시간제는 무늬만 40/52시간제이고 실제로는 예전의 방식대로 회귀하는 제도적 이중구조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결과의 수준에서 논의되는 고식적 방식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처방이다. 문제의 본질은 근로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근로시간이 줄어들어도 그 줄어든 만큼의 경제적 가치가 보전될 수 있도록 하는 생산성 향상에 있다.

 

노동생산성 손실분

적어도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40/52시간제 근로를 택해도 OECD의 시간당 평균 노동생산성과 비슷한 수준의 생산성을 산출해야 한다. 따라서 OECD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이 갭을 줄이기 위해 혁신할 방법이 있는지를 같이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가령 OECD 시간당 평균노동생산성의 가치를 A라고 보고 우리의 현재 노동생산성을 B라고 봤을 때 이 둘 간의 차이에 해당하는 C값이 바로 40/52시간 근로제의 도입과 함께 우리가 고민해야 할 생산성 손실 값이다. 이 손실 값이 0으로 줄어들 수 있도록 노동생산성을 혁신해나가면서 이에 맞춰 40/52시간 근로시간도 단계적으로 정착시켜야 할 것이다.


* 한국 노동생산성의 손실분 (C) = OECD 평균 시간당 노동생산성 (A) - 한국 시간당 노동생산성 (B) 


OECD의 '2017 고용동향'에 따르면 한국의 2016년 기준 국내 취업자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2069시간이다. OECD 회원 35개국 평균은 1764시간으로 이보다 305시간 많은 셈이다. 법정 노동시간 8시간으로 나눈다면 한국 근로자는 OECD 근로자들보다 평균 38일 더 일한 셈이 된다. 한 달에 평균 22일 일한다는 가정 하에 우리 근로자들은 OECD 근로자들보다 평균 1.7개월 더 일하는 셈이다. 일본 근로자보다는 두 달을 더 일한다.


근로시간을 노동생산성으로 치환해보자. 노동생산성은 각 나라의 물가수준을 반영한 실질 국내총생산(GDP)을 노동투입량(총 노동시간×취업자 수)으로 나눠 1시간당 창출한 부가가치를 나타낸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은 2013년 기준 29.9달러로 25위이다(한국생산성본부 '2015 OECD 회원국 시간당 노동생산성 비교'). OECD 1~5위 최상위권인 룩셈부르크(69달러) 노르웨이(63.8달러) 미국(56.9달러) 벨기에(52.5달러) 네덜란드(52.3달러)의 절반 수준이다. OECD 평균(40.5달러)에도 크게 미치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노동 생산성은 생산성본부가 관련 통계를 작성한 지난 2001년부터 13년째 20위권 밖에서 맴돌고 있다. OECD 평균 40.5달러를 기준으로 한다면 시간당 10.5달러를 덜 생산하는 셈이고 최고 나라 룩셈부르크를 기준으로 하면 거의 40달러 수준의 노동생산성 손실분이 존재한다.


이런 손실분이 존재하는 것을 무시하고 이에 대한 생산성 혁신 없이 근로시간을 임의로 40/52시간으로 줄이는 것은 우리나라가 생산할 수 있는 총 가치를 떨어뜨리고 결국 국가경쟁력을 추락시킨다. 40/50시간으로 근무를 축소해도 표준으로 요구되는 노동생산성을 달성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가 문제의 본질이다.


HRD의 노동생산성

40/52시간 근무제의 정착을 위해 HRD에도 압력이 제기될 것이다. HRD가 노동생산성 손실분을 줄어나가기 위해 어떤 혁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압력이다. HRD는 다른 생산기능에 비해 경기에 특히 민감한 영역이다. 경기가 좋을 때 HRD는 투자의 개념으로도 이야기되지만 지금처럼 경기가 꺾인 L자 경기 국면에서 HRD는 비용으로 간주돼 제일 먼저 압박이 가해진다. 내적 생산성 혁신을 통해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면 40/52시간 근무제는 HRD에 폭탄이 될 것이다.


HR의 충원, 훈련 및 교육, 배치, 성과보상, 유지관리 등의 기능 중 가장 타격을 받는 영역은 교육 훈련, 즉 HRD 영역이다. 근로시간과 무관하게 잡혀 시행되던 교육시간도 당연히 근로시간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법적교육에 대한 이수시간을 빼고 나면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물리적으로 따로 시간을 내서 하는 기존의 집합교육이나 이러닝 교육은 자연히 축소되고 궁극적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의 교육환급금에 기대어 살던 이러닝 업체나 기업교육업체도 위험에 처할 것이다. 정부의 기업교육환급금제도도 손질이 불가피해졌다.


이런 이슈가 닥치기 오래 전부터 HRD의 생산성은 심각한 비난을 받고 있었다. 교육의 생산성에 대한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ATD 등 연합체를 만들어 문제를 논의해왔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대부분 논의는 근원적 희생 없이 어떻게 HR이 회사의 전략적 파트너로 살아남을 것인지였다. HRD의 생산성 손실은 HR에서 가르쳐주는 것과 실제로 현업에서 실행과의 지행격차의 문제에서 온다. 아무리 시간을 많이 내서 배웠더라도 이런 배움이 자신의 현업에서 이행되지는 않는다. 말로는 전략적 파트너 운운하면서 교육을 현업으로부터 분리시키지 못하면 자신의 존재이유가 사라지는 이중성 때문에 자신들의 아킬레스건에 눈을 감아왔다. 교육현장(교육시간)과 현업(근로시간)을 많이 분리시켜야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이중성에 시달리는 동안 HRD는 지금까지 한 번도 회사의 전략적 파트너로 대우 받지 못했다.


교육과 현업을 완전히 통합해야 할 것

전략적 파트너십을 이야기하는 HRD에서는 아직까지도 커크패트릭Kirkpatric의 교육효과성 모형을 신봉한다. 이 모형은 교육장에서의 교육 만족도 → 교육장에서 지식의 완성 → 근로현장에서 행동으로의 전이 → 근로현장에서 가치의 창출로 교육효과성을 측정하고 있는데 기본적 전제가 교육장과 현장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처음부터 HRD가 전략적 파트너로 대접 받았으려면 이 교육시간과 현업의 시간을 나눠서 생각하는 문제를 해결했어야 했다. 지행격차를 극복하는 교육방법에 대한 혁신이 전제되어야 했다. 현업과 교육의 분절을 해결하기 위해서 일 속에 교육을 성공적으로 배태Embedding 시킬 수 있는 혁신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했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이 배태에 대한 방법론을 혁신해내지 못한다면 HR은 비생산적 부서로 부각돼 엄청난 비난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또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직업자체의 전문성이 부정당할 것이다.


HRD는 이 배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합교육이나 이러닝에 대한 의존성을 낮추고 마이크로 러닝이나 스마트 러닝 형태의 교육에 의존할 것이지만 이들도 배태에 대한 답은 아니다. 완전한 형태의 배태는 교육과 현업이 하나로 통합되는 순간에 달성된다. 결국 배태에 대한 다양한 실험결과를 제시해 기업교육의 미래를 제시할 수 있는 HRD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북미의 선진기업들에서는 이미 70/20/10 학습모델을 일반적 표준으로 설정하고 있다. 학습의 70%는 일하는 과정에서, 20%는 동료와의 협업을 통해서, 10%만 우리가 아는 공식적 학습을 통해서 한다는 것이다. 이미 지금까지 우리의 HRD가 생각하는 일반적 학습을 더 이상 학습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HRD가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대로 시간을 정해놓고 종업원들에게 교육내용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철저하게 학습자가 자신의 학습요구에 따라 스스로 학습의 주체로 태어나도록 도움을 줘야 할 것이다. 변화하는 환경에 걸맞게 HRD는 종업원들이 마음껏 일을 통해 전문성을 높일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플랫폼 역학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HRD가 주인이 아니라 종업원들이 학습의 진짜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플랫폼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체제로 혁신해야 할 것이다.


조직의 생산성에 대한 기여

지금까지의 방식인 강의장에서 학습자에게 학습 내용을 먹여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종업원들이 일을 통해 자신의 전문성을 신장할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 설계자 내지는 플랫폼 운영자로서의 역할이 HRD에 요구되는 기본적 생산성 혁신의 방향이다. 이런 내재적 혁신은 기본이고 이것을 넘어 HRD가 회사의 다른 기능 영역의 생산성 혁신에도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HRD는 이런 요구를 받으면 선진기업 선진관행을 모방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문제는 선진 HR영역에서도 이미 오래 전부터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국제 HRM 혹은 HRD 컨퍼런스에서 제시되는 주제를 보면 10년 전에 했던 이야기가 돌고 돌아 다시 재생되고 있다. 실제로 어려운 불황을 뚫고 생산성 혁신에 성공한 모든 회사들은 HR이 선두에 서서 생산성 혁신을 위한 자신만의 방식을 만들어나가는 회사들이다. HR을 드라이브로 삼아 회사의 문화를 더 생산적으로 혁신하는 일이 과제이다.


산업사회의 빠른 추종자의 입장이었을 때는 선진문화를 카피해서 따라잡는 것도 의미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기업 스스로가 HR의 추동력을 지렛대로 삼아 자신의 문화적 가치를 제품과 서비스에 실어내지 못한다면 어떤 회사도 생존하기 힘들다. 가성비와 가격만으로는 생산성 혁신이 달성될 수 없는 세상이 전개되고 있다. 카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회사에 고유한 HR(리더십 모형, 핵심인재, 기업문화, HR 제도)의 원형을 디자인해서 우리만의 고유한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가 우리 기업들이 처한 절대 절명의 과제이다. 카피하고 벤치마킹해서 살아남았던 HR의 옷을 벗어던지고 우리 회사의 생산성 혁신의 문화는 우리가 디자인한다는 HR의 민주화 선언이 필요하다. 벤치마킹에 치중해서 생존해왔던 HR이 회사의 문화를 벌거숭이 임금님으로 만드는 데 조력했다. 이제는 HR이 주도해서 이 유행의 첨단을 걷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우리의 옷이 아닌 옷을 벗어 던지고 우리의 옷을 우리 스스로 디자인해서 입어야 할 시점이다.


문화를 설계할 주도권이 HR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딥 체인지Deep change를 통해 실제로 이런 문화를 만들어내는 일을 해야 할 시점이다. 스스로가 디자인한 문화를 통해 학습한 것과 일하는 것의 지행격차를 극복하는 문제, 문화의 씨앗인 사명과 목적을 복원해 회사의 정체성에 대한 심도 있는 개념화를 통해 시대에 맞는 업을 도출하는 문제, 사명과 목적을 성공적으로 내면화하는 문제, 문화적 지렛대를 이용해 회사의 외연까지 포함한 사회적 혁신을 주도하는 문제 등에 대해 HR이 주도권을 되찾아 올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본질적 문제에 대해 HR이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을 때 HR은 자신에 맞는 문화를 스스로 디자인하는 민주화를 달성할 것이다. HR의 자주성 회복은 회사의 고유한 문화를 만들어내는 원천으로 작용해서 생산성에 고질적 암 덩어리로 등장한 종업원의 인게이지먼트 부족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고유한 문화의 설계자로 인게이지먼트 부족으로 인해 기하급수적으로 누적되는 노동생산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때 HR이 회사 안에서도 40/52시간 근로의 문제를 혁신적으로 돌파하는 진정한 파트너로 대접받을 것이다.


벤치마킹은 생산성 혁신의 시작점이지 종착역은 아니다. 종착역은 HR이 주도해서 HR의 서명이 들어간 제대로 된 문화를 통해 종업원의 인게이지먼트를 복원해내고 이를 통해 노동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 올릴 수 있을 때 도달할 수 있다. 40/52 근로시간제 제도화는 HR의 서명이 들어간 'Authentic 문화'를 HR이 주도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내재적으로는 지행격차와 관련된 배태의 문제를 해결하고 거시적으로는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문화를 설계해서 대응하지 못한다면 40/50시간제는 HR의 발목을 죄는 족쇄로 작용할 것이다.


무늬만 40/52 근무시간제?

한 때 우리나라에는 '무늬만 팀제'라는 용어가 있었다. 부서가 아니라 팀이 시대적 조류라고 해서 다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는데 이에 대한 변화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제도는 팀 제도를 도입해놓고 일하는 방식은 과거의 부서제와 같은 방식으로 일하는 상황을 꼬집은 것이다. 겉으로는 제도가 채용된 것으로 보이지만 옷을 벗겨보면 옛날 방식이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실제로 작동되는 방식과 겉모습 간 괴리가 일어나는 현상을 제도적 디커플링Decoupling이라고 부른다. 어떤 제도이던지 상황에 맞지 않는 제도적 장치를 강제하면 사람들은 겉으로는 제도가 가진 법적 강제를 피하기 위해 법을 따르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기존의 방식대로 처리하거나 편법을 동원한다. 여기서 볼 수 있듯 제도는 그냥 문제해결을 위한 시작점에 불과할 뿐 최종 종착역이 될 수는 없다. 제도만능주의는 무늬만 받아들이는 연기를 강요할 뿐이다.


직원 측면에서 40/52시간 제도는 종업원의 저녁 있는 삶을 보장하기 위한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다. 하지만 워라밸도 정부나 회사가 생각하고 있듯이 물리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시간싸움으로 생각한다면 회사와 직원간의 제로섬적인 논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체험한 시간의 문제고 이 체험한 시간을 결정해주는 것은 회사가 가진 혁신적 문화의 문제이다.


직원과 회사가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문화적 정체성이 없는 경우 일과 삶에 대한 체험이 분절된다. 일에 지쳐서 퇴근하더라도 집에 와서 여가에 금방 몰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직장에서의 기억이 여가를 즉각적으로 즐기도록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여가에서 일로 복귀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의 충분한 휴식을 끝내고 일로 복귀했다고 그대로 일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에서 추구하는 것과 삶에서 추구하는 것의 분절을 강요하는 회사에서 근무할수록 일과 여가 간 전환에 더 많은 시간이 요구되고 전환이 됐어도 잔상효과 때문에 여가나 일에 심각하게 몰입하지 못한다. 회사에서는 악마처럼 일하고 집에 와서는 천사가 되어야 한다면 어느 하나에도 제대로 몰입할 방법이 없다.


윤정구 이화여자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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