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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몰입하는 조직문화가 답이다_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놓치는 것들

2018-10-31


 

최근 많은 기업이 워라밸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주 52시간 근무의 공식적인 시행을 자사의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계기로 만들고자 분주히 노력하고 있다. 일부 제조기업의 현장조직들은 새로운 노동법 기준에 따른 현실적인 근무방식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하고, 또 일부 기업은 오히려 주 35시간 근무제를 내부적으로 제도화해 더 적극적으로 근무시간을 줄여가기 위한 노력하고 있다.

 

물리적인 근무시간을 무조건 줄여야 한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우리 사회의 경쟁력이나 개별조직의 경쟁력을 향상하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것인지를 논하기보다는 이것이 최소한 우리 사회가 양적 성장만이 아니라 개인 삶의 질적 성장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사회적 가정, 그리고 기업이 더 이상 구성원을 비즈니스를 위한 비용이나 자원으로만 보지 않고 그들의 삶을 돌보고 배려해야만 기업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회적 가정을 만들어가는 긍정적인 계기인 것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이 시도하고 있는 변화노력들이 여전히 피상적인 전제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는다.

 

첫 번째는 "52시간의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일단 물리적인 근무시간을 무조건 줄여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다수의 기업들이 일정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게 하는 PC 셧다운 제도나 야간-연장근로를 사전 승인 받게 하거나 패널티를 주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러한 접근은 일하는 습관을 바꾸기 위한 단기적인 조치는 될 수 있겠지만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시대의 노동은 대부분 지적활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의 생각은 스위치를 끄면 멈추고 켜면 다시 작동하는 것처럼 단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이렇게 시간을 통제하는 활동들이 지속되면 PC 앞에 앉아 있을 때만 일하는 것이고, 업무시간 이외에는 일에 대한 생각도 이야기도 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철저한 이분법적인 집단가정이 조직 내에 형성될 수 있다. 이것이 지속되면 일은 돈만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며, 철저하게 받은 돈의 시간만큼만 자신의 지적 노동력을 제공하면 된다는 거래적인 가정이 형성된다. 이러한 집단가정이 자리 잡힌 조직에서 개인의 주도성이나 창조성, 또는 서로간의 소통이나 협력을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만일 이러한 근무시간 자체를 통제하는 활동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반드시 컴퓨터를 강제로 끄는 것과 같은 유치한 행동은 일시적인 캠페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이를 통해 우리가 더 효과적이고, 더 행복하게 일하는 습관을 만들기 위함임을 명확히 해야만 한다. 근무시간을 통제한다는 것이 구성원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신에 일에 대한 주도성이나 생각의 자유로움을 통제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줄어든 근무시간에도 일의 양은 그대로!

많은 기업에서 시도하고 있는 변화노력들이 피상적인 수준에 머무르는 두 번째 전제는 "짧아진 근무시간 내에서도 같은 양의 업무를 처리해야 하니 업무 외의 모든 것들은 줄여나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많은 기업이 회의시간을 줄이고, 보고를 줄이고, 문서도 줄인다. 심지어 옆자리 동료와 담소 나누는 시간까지도 줄인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지극히 타당해 보이지만 여전히 시간을 물리적으로 통제하고자 하는 피상적인 활동에 지나지 않는다.

 

정해진 시간 내의 업무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접근으로 최근 많은 조직이 집중근무시간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사실 집중근무시간제도는 10년 전에도 많은 기업에서 시도와 폐지를 반복했던 익숙한 활동이다. 업무 중에 구성원들의 주위를 분산시킬 요소를 최대한 제거해 정해진 시간동안은 온전히 자신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는 면에서 매우 효과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잘못된 실행방법으로 인해 오히려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집중근무시간제도가 올바르게 운영되고 있는지는 집중근무시간의 시작 직전과 마친 직후에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집중근무 시작 전에 안내 방송이 나오거나 사람들이 허둥지둥 서둘러 움직이는 모습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이미 잘못된 부작용이 시작되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집중근무가 끝나자마자 흡연 장소나 커피숍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리는 모습이 보인다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아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일부 조직에서는 집중근무시간 동안 인사팀에서 돌아다니면서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수를 점검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야말로 최악의 업무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잘못된 집중근무시간제도는 구성원들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생각과 업무가 또 한 단계의 시간적 통제 안에 있다는 가정을 갖도록 유도한다. 다시 말하면 8시간이라는 근무시간 안에 자신의 생각과 행동의 자유가 이미 통제되고 있는데 그 안에서 또 다시 2시간이라는 집중근무시간 동안 더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는 무의식적인 가정이 구성원들에게 만들어질 수 있다. 또한 자기 혼자서 집중해야 하는 업무 이외의 다른 업무활동들, 회의나 정보공유, 협업이나 업무지원 또는 동료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과 배려 등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집단가정을 형성하게 해 조직전반의 소통과 협력을 떨어뜨리고 개인과 조직의 업무적인 시너지를 저해하는 위험이 있을 수 있다. 한 예로, 단축근무나 집중근무제를 실행하는 조직에서 후배들을 위한 육성이나 동료 간의 업무공유 등이 떨어지는 것은 일반적인 조직문화 진단 상에 나타나는 지극히 흔한 현상이기도 하다. 

 

조직의 특성상 집중근무제도와 같은 시간적-물리적인 통제를 통한 업무집중도 향상을 위한 활동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이것 또한 우리가 더 효과적이고 더 자유롭게 일하기 위한 일시적인 변화시도나 캠페인이지 절대로 사람들의 시간을 물리적으로 통제하려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해야 한다. 또한 우리가 원하는 것이 단순히 시간적인 집중이 아니라 자신의 일에 대한 몰입의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구성원 각자의 의식적 템포에 맞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구성원 스스로가 자신의 동료들이 업무에 스스로 집중하는 것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정서적 환경을 만들어가는 노력이 물리적인 시간이나 제도의 실행을 강조하는 것보다 반드시 우선돼야 할 것이다. 우리가 집중근무시간제도와 같은 활동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사람들의 물리적인 집중도를 높이기 위함이 아니라 구성원 스스로 자신의 일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기 위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조직문화 변화의 핵심은 '몰입'과 '생산성'

워라밸이라는 사회적 변화, 그리고 주 52시간 근무제라는 현실적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문화적인 노력의 핵심은 무엇인가를 줄이는 데가 아니라 몰입과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 있어야 한다. 몰입과 생산성은 검의 양날과 같다. 이것은 하나의 목표를 위한 동일한 노력이지만 동시에 완전히 독립적인 노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좋은 검이 되기 위해서는 양쪽날 모두가 날카로워야 하지만 한쪽 날을 열심히 갈고 닦는다고 해서 반대쪽 날도 함께 날카로워질 것이라는 기대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이러한 시도는 오히려 검의 균형을 잃게 해 검의 질을 떨어뜨리게 된다. 다시 말해서 업무생산성을 높이는 노력이 구성원들의 업무몰입을 이끌어내는 직접적인 동인이 되지 않으며, 업무몰입을 높이려는 노력이 반드시 업무생산성과 직결되는 것 또한 아니라는 의미이다.

 

일부 기업들이 업무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시도하는 불필요한 일 줄이기 활동을 예를 들어보자. 표면적으로 보면 그동안 관행적으로 실행했던 몇 가지 불필요한 업무가 발견되고 줄어들었으니 제한된 시간 내 동일한 업무에 대해 생산성이 향상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불필요한 업무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구성원들은 자신의 일이 무의미 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자신의 업무를 그리고 타인의 업무를 바라보고 그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되며, 이것은 전반적으로 자신의 일의 의미에 대한 인식을 저하시키게 된다. 또한 하기 싫은 업무가 몇 가지 줄어들었다고 해서 자신의 일이 더 흥미로워지거나 몰입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저 조금 여유가 생기는 것에 불과하다.

 

일의 명확한 목적에서 몰입이 시작된다

몰입과 생산성은 둘 다 업무의 목적을 명확히 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업무의 목적이 명확해지면 기존에 자신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에 대한 가정을 점검해볼 수 있고, 그것을 토대로 업무 자체를 완전히 새롭게 재정의해 볼 수 있게 된다. 업무 재정의 과정에서 새로운 업무가 오히려 늘어날 수도 있고, 자연스럽게 일부 업무가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업무 재정의 과정에서 업무목적을 이루기 위한 세부업무들을 자신이 진심으로 몰입해야 하는 업무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업무로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먼저 진심으로 몰입하지 않아도 되는 업무들은 철저하게 생산성의 관점에서 관리해 나가면 된다. 대부분의 이러한 업무들은 자신의 노력과 투입시간을 최소화하면서도 소홀해지지 않도록 자동화시켜 나갈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 가면 된다. 그리고 여러 이유로 아직은 자동화 시킬 수 없는 업무들은 추가적인 고민을 하지 않으면서 빠르게 처리해나갈 수 있도록 효율화를 위한 대안들을 만들어 가면 된다.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업무들은 의도적으로 제거하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소멸되어 갈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진심으로 몰입하지 않아도 되는 업무들이 생산성의 관점에서 잘 관리되어짐으로 인해 얻어지는 시간과 정신적인 여유들은 우리의 노력과 시간을 진심으로 몰입해야 하는 업무에 더 많이 할애할 수 있도록 해준다. 궁극적으로 생산성의 노력을 통해 일의 효율을 높이고 시간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사람들이 자신의 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통한 업무적인 몰입이 다시 생산성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키게 되는 긍정적인 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질 때 우리의 성과는 극대화된다.

 

조직의 성과는 느린 몰입과 수동적 몰입에 달려 있다

몰입은 행동적인 측면에서 능동적인 몰입과 수동적인 몰입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능동적인 몰입은 마치 테니스를 치거나 축구를 할 때처럼 단시간 동안 우리의 모든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집중해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일에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능동적 몰입은 짧은 시간동안 빠르게 몰입해 성과를 내고 그 시간이 끝나면 바로 몰입상태에서 벗어나게 되는 빠른 몰입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수동적인 몰입은 우리가 마치 명상이나 기도를 할 때처럼 여유롭고 이완된 상태에서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한 상태를 비교적 장시간동안 유지하면서 우리의 정신적 에너지와 지적능력을 최대한 동원해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일에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일은 상황에 따라 분명히 능동적인 몰입의 상태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일하는 환경을 항상 능동적인 몰입의 상태를 만들 수는 없고 또한 그것이 절대로 조직의 성과에 바람직하지도 않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 일의 대부분이 지적활동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면, 그리고 이제는 이러한 지적활동들도 단순한 지식의 활용을 넘어서는 보다 복합적이고 창의적인 문제해결을 필요로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전제한다면, 조직의 성과는 어떻게 구성원들이 수동적인 몰입, 즉 느린 몰입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업무 속에 단순한 지적활동들은 점점 더 지능형기계들의 영역으로 빠르게 전환될 것이다. 결국 조직의 진정한 성과는 인간의 지적능력을 최대한 활용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업무들의 결과로 만들어지게 될 것이며 이것은 수동적 몰입, 즉 느린 몰입을 통해서만이 가능할 수 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느린 몰입은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각이 시간에 따라 단계적으로 깊어져 탁월한 문제해결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우리의 뇌는 어떤 생각이 시작되면 처음에는 이 생각과 밀접하게 관련된 기억이나 사고기능들이 활성화되기 시작하고 같은 생각의 상태를 지속함에 따라 연합뉴런에 의해 조금 덜 관계있는 기억이나 사고기능들까지 활성화되며 마침 내 전혀 관계없을 것 같은 기억이나 사고 기능까지 모두 활성화되는 상태가 되는데 이것이 느린 몰입 상태이다. 느린 몰입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간이나 물리적인 통제가 아니라 오히려 시간이나 물리적인 공간은 최대한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하되, 핵심적인 한 가지 생각을 스트레스나 압박감이 없는 상태에서 끊김 없이Seamless 유지할 수 있는 조직문화적인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또한 구성원 스스로 느린 몰입의 상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분명한 이유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주 52시간 근무제라는 명분으로 우리가 선택한 다양한 활 동이 오히려 우리 구성원들의 느린 몰입을 방해하는 환경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쯤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유준희 조직문화 공작소, AIPU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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