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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in 생활백서

[팀장으로 산다는 건] #26 지금 명함에서 회사를 지워보세요

[팀장으로 산다는 건] #26 지금 명함에서 회사를 지워보세요

 

 

컨설팅 프로젝트가 막바지에 다다르던 20XX년 봄, 산출물 작업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수백 페이지에 이르는 산출물을 만들기 위해 일 년 넘는 시간을 쏟아붓고 있었죠. 거의 매일 야근을 했던 우리 팀은 최종보고회 전날 모두 날을 꼬박 새웠습니다. 자정이 넘어서면서 최종 리뷰를 시작했습니다. 회의실에서 한 장 한 장 넘기며 보는데, 자꾸 화면이 희미하고 겹쳐 보였습니다. 피곤해서 그럴 거라 넘기고 말았죠. 

 


 

 

다행히 다음 날 보고회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고객사를 나와 이른 오후에 회식 자리로 이동했습니다. 다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프로젝트를 무사히 완료했다는 안도감이 어른거렸습니다. 술잔이 몇 순배 돌았고, 거나하게 흥이 올랐습니다. 야근과 밤샘을 밥 먹듯이 했으니 실상 쓰러지기 직전이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겁니다만. 다행히 회식은 일찍 끝났고, 다음 날은 쉬어도 좋다는 이사님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술집을 나와 집으로 향하던 길에 와이프 전화가 왔습니다.

 

"여보, 또 늦는 거예요?"

"아니요, 지금 끝나고 가고 있어요."

"오면 할 얘기가 있어요. 아주 많이요."

"어떤 건데요?"

"그동안 당신 바쁜 것 같아서 말을 못 했는데, 우리 이제 곧 전세 계약 만료잖아요. 집을 어떡할지 생각해야 하고, OO이가 내년에 학교 가는데, 어느 학교가 좋은지 같이 얘기해봐야 해요. 그러려면 우리 잔고 상황을 살펴봐야 하고..."

 

와이프 얘기는 장황하게 이어졌지만, 귀에 잘 들어오질 않았습니다. 어서 집에 가서 눕고 싶단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알았어요. 자세한 건 집에 가서 해요."

 

그러곤 버스를 타고 아파트 단지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우리 집이 있던 아파트 동 현관에서 비밀번호를 눌러야 하는데, 생각이 나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눌러봐도 아니라는 겁니다.

 

'어... 매일 눌렀던 번호가 생각나질 않네.'

 

결국 우리 집을 호출해서 들어갔습니다. 걱정스럽게 저를 쳐다보던 와이프 앞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로사라는 게 이런 것인가...'

 

'남을 위한 계획은 수백 장 만들었으면서, 나와 가족들을 위한 계획은 한 장이 없었네...'

 

 

길어진 인생, 짧아진 회사생활

내 인생 계획은 어디에

 

오늘의 일에 몰입하고 매진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오늘을 열심히 산다 해서 내일이 보장되는 것은 아닐 수 있어서 고민이 시작됩니다. IMF 이전, 산업화 세대는 사실 '자기계발'이 필요 없었습니다. 대부분 사람이 웬만한 직장을 잡을 수 있었고, 모두 임원이 될 순 없었지만, 승진 못 한다고 쫓겨나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만년(萬年) 부장', '만년 과장'이란 단어가 있었습니다.

 

대략 55살 즈음에 퇴직해서 10여 년 살다 생을 마감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1980년 한국인 평균수명은 65.9세) 당시 이자율이 15% 이상이었기 때문에 퇴직금으로 기본적인 여생은 보낼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지금이 경제적으로 더 풍요하긴 해도, 인생 전반에 대한 불안감은 그때가 덜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는 점점 늘어가는 수명과 관련이 있습니다. 2019년 현재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3세(남자 80.3년, 여자 86.3년)입니다.

기대수명 추이, 출처: 네이버 캡처 

 

팀장이 보통 30대 후반 ~ 40대 중후반인 점을 고려해 평균 나이를 42세로 잡는다면, 정년까지는 18년, 기대수명까지는 40년이 남았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한 가지 더 참고할만한 직장인 나이 통계는 '주된 직장에서 퇴직하는 나이'입니다. '가장 오래 근무한 직장에서 퇴직하는 연령'이라 할 수 있는데, 2017년 기준 49.1세라고 합니다. (출처: '60세 이상 정년 의무화의 입법 영향분석', 국회입법조사처, 2019.11) 퇴직 후에 이직하는 경우가 있겠습니다만, 예전 직장 이상의 조건으로 옮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입니다. 결국 50세가 되기 전에 직장인으로서 정점을 찍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직 살날이 30년 넘게 남았는데 말입니다.

 

 

연봉만큼 벌기 위해 닭을 몇 마리 튀겨야 할까

‘사표 내고 치킨집이나 할까.’ 한동안 직장인들 술자리에 안주처럼 등장하던 얘기죠. 특히 1~2년 전엔 ‘퇴사’ 열풍이 불었었고요. 직장을 나가서 자영업에 뛰어드는 건 ‘숫자’로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알고 싶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노후에는 네 가지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금전, 관계, 의미, 건강. 이 중에서 창업이 가져올 수 있는 '금전적 측면'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개인마다 금전에 대한 가치관이나 기대치가 다르겠지만, 기존 직장의 급여 수준을 유지하려면 어느 정도를 벌어야 하는지를 마지노선으로 잡고 얘기해보겠습니다.

 

연봉 5천 만원 직장인이 퇴직한다고 가정해보죠. 자영업을 시작해서 현재 연봉 이상을 벌고 싶은 사람입니다. 우선 현재 직장에서 '진짜로 얼마를 벌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연봉 5천만 원이면, 월급은 4,166,667원

- 국민연금 4.5%, 건강보험료 3.33%, 장기요양보험료 건보X10.25%, 고용보험료 0.8%, 소득세, 지방소득세를 근로자 부담 (629,570원)

 

회사가 부담하는 부분을 고려해야 합니다. 근로자가 부담하는 4대 보험료(374,020원)를 부담합니다. 고로 이 부분까지 번다고 봐야 합니다. 즉, 연봉 5천 만원에 4,488,240원(374,020 X 12개월)을 더합니다.

 

아울러 사무실, 책상, PC 등의 근무환경을 받으며, 단체 보험, 상품권, 콘도 할인권 등의 금전적인 혜택도 고려해야 합니다. 따라서 본인 연봉에 적어도 25%는 더해야 진짜 얼마나 벌고 있는지가 계산됩니다.

 

-{연봉 5천 만원 + 4대 보험료 회사 부담분(4,488,240원)}X 1.25(복지비용 25%) = 68,110,300원

- 실질 월급 = 68,110,300원 / 12개월 = 5,675,858원

 

연봉 5천만 원이 그냥 액면 그대로 5천만 원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세전 68,750,000원 이상을 벌어야 연봉 5천만 원 이상의 값을 합니다. 여기에 출퇴근 교통비, 식사비 등을 빼면 영업이익이 구해질 수 있습니다. 교통비는 월 10만 원, 식사비는 20만 원으로 가정하겠습니다. 그러면 월 영업이익은 5,375,858원이 됩니다.

 

국세청은 자영업 직종별로 경비율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임금근로자와는 달리 비용을 많이 쓰는 특성상 기준을 갖고 신고의 타당성을 판단하고, 매출 규모에 따라 다른 기준을 적용하기 위함입니다. 이 '경비율'을 '판관비'라고 생각한다면, 개념적으로 영업이익률을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아래는 2019년 단순경비율을 통해 이익률을 계산해본 상위 50개 업종입니다.

 

(영업) 이익률 계산, 상위 50개 업종

 

 

이 자료에 따르면, 치킨 전문점 영업이익률은 '13.9%'입니다. 연봉 5천만 원의 실질 월 영업이익 5,375,858원을 넘으려면 2만 원 짜리 치킨을 몇 마리를 팔아야 할까요? 한 달 영업일을 26일로 가정하면 하루에 74마리입니다. 숫자만 들어봐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자영업 자체의 이익률은 높지 않습니다. (참고로 커피 전문점은 14.4%, 노래방은 24.5%입니다) 직장 시절 연봉을 넘는 기대수익을 올리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계산은 투자 비용은 고려하지 않는 것이라 더욱더 그렇습니다.

 

내 사업을 준비하는 자세

직장 생활의 만족도는 낮지만, 회사라는 울타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제공합니다. 또한 회사 밖은 매우 춥습니다. 퇴직금은 없고, 보험료, 복지비 모두 본인이 부담해야 합니다. 안팎의 상황을 고려하면서 주도면밀한 자세와 계획이 필요합니다.

 

1. 잘하는 일을 먼저 생각합니다

흔히들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조언을 많이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잘하게 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시간이 비교적 넉넉한 청년에게나 가능한 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퇴직을 고려하고 있는 팀장에겐 뜬구름 같이 들립니다. (물론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가능할 수 있겠습니다)

 

본인이 잘하는 일이 뭔지 우선 살펴봐야 합니다. 잘 하는 일의 기준은 돈이 되느냐 입니다. 지금 바로 회사에서 만들어준 명함을 꺼내 보십시요. 회사와 부서를 가려보세요. 본인 이름만으로 뭔가를 팔 수 있나요? 다시 말해, 나를 사 줄 사람이 있습니까?

 

  

 

먹고 사는 건 잘하는 걸로 합니다. 잘 하는 게 없으면 남이 짜놓은 판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좋아하지만 돈이 되지 않는다면 그 일은 직업이 아니라 그저 취미일 뿐입니다.

 

2. 회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주위에 회사를 나가 자영업을 시작한 분들을 수십 명 봐온 결과, 공통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성공적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는 사람 대부분은 회사에서 했던 업무와의 연관성이 높은 업종으로 진출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판세를 알고 전장에 뛰어드는 장수와 같습니다. 장수는 훈련을 거듭하고 결과가 좋아 장수가 됐겠지요. 팀장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회사에서 쌓을 수 있는 자산은 상당히 많습니다. 업계에서 통용되는 경험, 지식, 그리고 인간관계. 이것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회사는 지겹고 따분한 공간에서 신나고 재미있는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20년 넘게 온라인 교육업체, 휴넷의 조영탁 대표는 새벽 6:30에 출근하는 선배에게 자극을 받아 본인도 그렇게 해봤더니 회사생활 자체가 즐거웠다고 합니다. 회사는 돈 받으며 경영수업을 받는 공간이었다고 하네요. 회사에서 무엇을 얻어내고, 배워갈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3. 작은 시도라도 우선 해본다

처음부터 거창한 사업계획서를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성공한 벤처 중 상당수는 애초에 추진했던 사업에서 벗어난 사례가 많습니다. 카카오는 원래 소셜미디어를 지향하다 카카오톡으로 전환했고, 트위터의 경우는 인터넷 라디오 사업이 애초의 추진 방향이었습니다. 개인의 경우도 비슷한 경로를 밟으며 진화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저 같은 경우 대리 시절에 우연히 유명 교육기관에서 강의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회사 상사 자리 대타를 뛰게 된 것이죠. 긴장을 많이 했는데, 수강생들 반응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강의할 때 기분이 짜릿하더군요. 강의를 준비할 때 공부하며 지식을 쌓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강의를 좋아하는지는 저 역시 알지 못했었습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간간이 강의했었고, 이후 코칭과 컨설팅으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시도한다'는 것은 내가 잘하는 부분이 진정으로 '돈을 되는가를 검증'해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시점에서는 두려움보다는 '닥치고 도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팀장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회사를 떠나 본인의 사업을 생각한다면 최대한 빨리 준비에 들어가는 게 중요합니다. 앞서 설명한 여러 현실을 생각할 때, 본인의 현재 일과 연관성을 가진 아이템이 경쟁력이 있는지를 자문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회사 입장에서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을 적대시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회사의 자산을 훔쳐 가는 것이 아니라 재직 기간 동안 열심히 일하다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기 위해 나가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회사 차원에서 전직프로그램(Outplacement)을 운용하는 곳들이 늘고 있습니다. 물이 한 곳에만 머물지 않듯이 사람도 그렇습니다. 그런 움직임을 통해서 직원, 회사 모두 활기차게 변모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필자 김진영 (jykim.2ndlife@gmail.com)

■ 정리 인터비즈 박은애 

 

대학에서 문학을, 대학원에선 경영학을 전공했다. 22년 동안 대기업 중견기업 벤처 공공기관 등을 거치며 주전공인 전략기획 외에 마케팅 영업 구매 인사 등 다양한 업무를 경험했다. 최근엔 개도국 전자정부 컨설팅부서에서 프로그램 매니저를 맡고 있다. '성장과 발전은 끝이 없다'를 신조로 삼고 있으며, 함께 성장하기 위해 조직에 학습조직을 만들고 사내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최근 관심사는 조직 변화와 새로운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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