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R매거진 채용동향

스타트업 떠나 대기업으로 돌아오는 개발자들 [더플랩]

2022-08-17

 

“연봉 6000만 원 받고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 엉망인 대기업 다니느니 성장하는 스타트업 잘 키워 연봉 올리는 게 훨씬 낫다” 얼마 전까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서 높은 공감을 받았던 글입니다. 하지만 그 밑에 달린 “매우 힘들더라도 대기업에서 버티는 게 최고”라고 언급한 댓글이 최근에는 더 높은 공감을 받고 있습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해 스타트 업계에 빙하기가 시작된 가운데, 개발자 채용 시장에서도 ‘대기업 유턴’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반년 전까지만 해도 상장과 스톡옵션 대박을 좇아 대기업에서 강남 테헤란로와 판교 스타트업으로 줄줄이 나오던 개발자들이 다시 대기업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IT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개발자들이 초기 스타트업에서 대박을 노리기에는 너무 위험한 시기”라면서 “안정성과 새로운 도전 모두를 챙길 수 있는 대기업이 새로운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개발자 채용 플랫폼과 회사 규모별 개발자 채용 공고를 분석해 보니, 올해 상반기 스타트업 개발자 채용 공고는 전년 대비 26.4% 늘어나는데 그친 반면 대기업 개발자 채용 공고는 438% 늘었습니다. 헤드헌팅 업계 관계자는 “요새 자금난에 시달리는 스타트업들에서 팀 단위로 이직을 시도하는 개발자가 많다”라며 “그동안 개발자를 잘 뽑지 못하던 대기업에서 이들을 적극 수용하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높은 연봉과 처우도 개발자들의 유턴에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삼성전자, SK 등 국내 매출액 상위 100개 대기업의 임직원 평균 연봉은 전년 대비 9.2% 상승한 8474만원으로 월급은 700만원 수준입니다. 포털·전자·통신 등 IT 기업들이 이같은 고속 임금인상을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숙련된 개발자 및 이직자를 필요로 하는 대기업들이 큰 상승폭으로 인재를 충원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을 간 후 스타트업의 단점을 경험한 개발자들의 후회 또한 유턴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대기업에 비해 체계 없는 시스템과 능력 없는 지인들을 데리고 오는 임원들, 20대 젊은 팀장 등. 대기업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스타트 업계를 경험하면서 체계 잡힌 대기업의 시스템을 그리워하고 있는 개발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대기업들이 사내 벤처기업을 적극 육성하는 것도 개발자 유턴과 관련이 깊습니다. 실제로 삼성·LG·현대차·GS·한화·코오롱·효성 등 대기업들은 사내 벤처 형식으로 메타버스, 블록체인, 모빌리티 등 다양한 신사업에 적극 진출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에서 LG유플러스의 사내 벤처로 이직한 한 개발자는 “주변 선후배 개발자들이 선호하는 기업은 분사와 상장 가능성이 있는 사내 벤처를 적극적으로 육성하려는 공통점이 있다”면서 “대기업들이 분사 후 상장이라는 조건을 내걸고 개발자들을 적극 영입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블록체인과 메타버스 신사업을 시작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스타트업 출신 개발자 지원이 작년보다 1.5배 증가했다”라고 했습니다.

 

스타트업의 불안정성도 개발자들이 대기업으로 복귀하는 이유입니다. 최근 자금난에 빠진 스타트업들은 강남 테헤란로에서 슬슬 빠지는 모양새입니다. 월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임차료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입니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강남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돈이 없어 월급도 제대로 못 줄 판인 스타트업이 적지 않다”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한 OTT 스타트업은 최근 강남역 본사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사무실 규모를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재능 공유 플랫폼 B사는 최근 100명 가까운 직원을 절반 넘게 줄이고 본사를 강남에서 성동구 성수동으로 옮겼습니다. 투자 유치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배달 대행 플랫폼 ‘부릉’ 운영사 메쉬코리아는 지난달 연말까지 본사를 경북 김천시로 옮긴다고 밝혔습니다.

 

한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이익을 못 내는 스타트업이 줄일 수 있는 건 결국 임차료와 인건비”라며 “사람뿐 아니라 코로나 이후 테헤란로로 몰려왔던 스타트업들도 불경기로 인해 썰물처럼 빠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