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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매거진

조직이 수평이냐 수직이냐의 판단 기준은?

2021-08-04

 

 

구기욱 쿠퍼실리테이션그룹 대표 /《반영조직》 저자 

 


수평이냐, 수직이냐?
조직이 수평이냐 수직이냐의 판단 기준은 의사결정 구조로, '누가 결정권을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상층부의 리더가 높은 책임의식을 가지고 결정을 내리는 조직을 수직적 조직이라고 부른다. 구성원들이 업무 현장에서 필요에 따라 결정을 내리고, 조직 차원의 전략적 결정 역시 구성원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결정하는 조직을 수평적 조직이라 부른다. 많은 수평적 조직들이 갖고 있는 제도적 특성만을 본따 직급을 없애고, 청바지를 입고, 호칭을 바꾸어도 수평적 조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여전히 상층부에 집중된 의사결정 구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수평적 조직을 만들고자 노력할까? 수평이냐 수직이냐의 본질은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와 지식이 어디서 생산되며 그 정보를 누가 일차적으로 보유하고 있느냐에 달렸다. 의사결정을 하려면 정보와 지식이 필요하다. 우리가 직업을 갖기 전에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는 일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축적하기 위해서다. 일하는 것은 정보수집-정보처리-의사결정-실행의 연속이다. 정보가 없이는 현명한 결정을 할 수 없다

오늘날은 학교에서 배우거나 과거 경험으로 습득한 정보와 지식이 의사결정의 타당성을 확보해주지 못하는 VUCA 시대이다. 이처럼 세상이 빠르게 바뀌기 때문에 신속한 결정의 필요성은 커지고 유용한 정보의 수명은 짧아진다. 복잡한 세상이기 때문에 사람의 정보만으로는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일선에서 직접 결정하고, 그 접점에서 생산된 정보를 조직 차원에서 민첩하게 다루는 역량이 없다면 조직의 현명한 결정이 줄어들게 된다. 이것이 수평적 조직에 대한 압박의 실체이다.

질문하는 리더
사장단 회의에 가면 회장이 주로 발언한다. 임원 회의에 가면 사장이 주로 발언한다. 팀장 회의에 가면 임원이 주로 발언하고, 팀원 회의에 가면 팀장이 주로 발언한다. 리더들은 참여자의 침묵을 탓하지만, 구성원의 적극성 부족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리더의 퍼실리테이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VUCA 시대에는 리더가 구성원에 비해 최신 정보를 더 많이 가지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구성원 역시 최신 정보를 당연히 많이 알고 있다고 착각해선 안 된다. 구성원 각자가 맡은 업무 범위는 제한적이다. 제한된 범위 안에서 최신의 정보를 보유할 뿐이다. 세상이 느리게 돌아가던 시대에는 보고 라인을 통해 리더에게 최신 정보를 집중하는 매커니즘으로 조직을 움직였다. 보고 라인을 통해 보고서를 작성하면, 최종 보고를 할 때까지 그 보고서에 담긴 정보는 최신 정보로서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VUCA 시대에 이와 같은 보고 체계는 정보의 최신성을 심각하게 손상시킨다. 말하는 것보다 글을 쓰는 것이 훨씬 많은 시간을 소모한다. 글로 보고서를 작성한 뒤 보고 단계를 거치는 시간에도 세상은 빠르게 변화한다. 보고서 작성 방식으로는 적시성을 맞추기가 점점 어려울 수밖에 없다. 구성원들이 리더가 무엇을 궁금해할지 생각하며 보고서를 만들고, 리더에게 보고할 때가 되어서야 그들에게 다른 궁금함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존의 방식은 VUCA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보고서를 작성하기 전에 리더는 구성원에게 미리 물어야 한다. 더 좋은 방법은 보고서를 만들 필요 없이 회의에서 묻고, 듣고, 논의하여 결정하는 것이다. 구성원이 최신의 정보를 가지고 있으니 그것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회장은 사장에게 묻고, 사장은 임원에게 묻고, 임원은 팀장에게, 팀장은 팀원에게 물으면 된다. 전사적인 이슈는 다 함께 모이는 타운홀을 개최하면 된다. 일부만 모이는 수직대화Facilitated vertical dialogue도 좋다. 물어도 대답을 잘 하지 않는 이유는 구성원들이 발언에 미숙하기 때문이 아니다. 리더가 퍼실리테이션에 미숙하기 때문이다

받아 적는 리더
일반적인 회의를 들여다보면 리더는 열심히 발언하고 참여자들은 열심히 받아 적고 있다. 회의는 이 반대로 진행되어야 한다. 참여자는 열심히 발언하고 리더가 열심히 받아 적어야 한다. 이때 리더는 노트에 받아 적는 것이 아니라 차트에 받아 적어야 한다. 차트에 적어야 리더와 참여자 모두 회의에서 발언된 내용을 다시 보면서 의견을 발전시켜 나가기 쉽다.

리더가 회의 주제에 관하여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받아 적는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을 내려놓고 참여자의 한 사람으로 활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회의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가장 좋은 주장이 의사결정에 담기는' 원칙이 실현되어야 한다. 목소리가 큰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 과거에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이번에 가장 타당한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결정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이런 일이 생기려면, 리더가 묻고, 듣고, 차트에 받아 적고, 또 묻고, 듣고, 받아 적으면서 현명한 결정을 향해 가도록 안내해야 한다. VUCA 세상에서 빠르게 업데이트되는 정보를 회의에서 꺼내 놓고 마음 편하게 다룰 수 있도록 리더가 돕는다면 그 조직은 최신의 정보와 지식으로 살아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작동할 경우 구성원의 존재감마저 높아져서 일할 동기가 충만해질 것이다

학습하는 리더
리더가 결정을 하지 말아야 한단 의미는 아니다. 리더가 가진 정보와 지식이 낡기 쉽다는 의미다. 따라서 리더는 지속적으로 학습해야 한다. 여기서의 학습은 책을 읽는 것과 같은 학습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열린 마음으로 업데이트하라는 의미이다. 그 정보는 책에도 있지만, 유튜브에도 있고, 구성원에게도, 고객에게도 널리 산재해 있다

리더가 호기심을 가지고 곳곳에 산재해 있는 새로운 정보와 지식에 다가가지 않는다면, 리더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정보만을 보유하고 있는 구세대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그 낡은 정보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조직이 기대하는 미래가 있다면, 거기에 어떤 방법으로 도달하면 좋을지 묻고, 듣고, 배우는 리더가 현명한 리더이다. 여기서 배운다는 것은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신념을 새로 입증된 신념으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반영하는 리더
훌륭한 리더는 '내가 결정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있다. 내가 가진 정보가 최신의 타당한 정보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하나의 이유가 추가된다. 바로 자율성의 부여라는 측면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를 원한다. 자유의 핵심은 결정권을 가지는 것이고, 결정권을 행사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자율성을 부여한다는 것은 어떤 일의 원인행위자Causal agent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어떤 일의 원인행위자가 되었을 때, 그 일의 결과가 그의 성취가 되고 그로부터 진정한 보람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반영하는 리더는 아래 대화와 같이 구성원들이 제안하는 여러 의견을 의사결정에 담아내는 리더이다

-구성원 :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리더 : 좋습니다. 추진과정에서 예상되는 어려움은 무엇일까요?
-구성원 : A, B, C가 위험요인으로 보입니다.
-리더 : 어떻게 극복해 나가죠?
-구성원 : X, Y, Z를 시도한다면 추진해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리더 : 현재로선 그게 최선인거죠?
-구성원 : , 맞습니다.
-리더 : 다른 변수가 생기는지 상황을 지켜보면서 추진해봅시다.

리더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구성원들이 결정권을 갖는 것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럴수록 리더는 구성원이 동원 가능한 최선의 정보를 바탕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결과가 생긴 것이라면 이는 누가 결정했어도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기 때문에 결정자에 책임을 돌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최신 정보, 가장 타당한 신념의 탐색, 의사결정에 필요한 충분한 정보와 지식이 동원되었다면, 그 결과 내리는 어떤 결정은 가장 현명한 결정Informed decision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구성원들은 원인행위자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최신의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려는 책임감이 절로 생겨날 것이다. 리더는 이 현명한 결정이 일어나도록 돕는 사람이다. 스스로 해낼 수 있지만, 타인의 정보와 지식을 활용하고 반영할 때 현명한 결정의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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