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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매거진

상사가 모른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더플랩]

2022-11-18

지난 3월 노동 전문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업체인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설문한 결과, 응답자 중 57%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사내 갑질 행위가 줄어들었다’고 답했습니다. 특히 40대와 50대 응답자는 '갑질이 줄었다' 답변이 각각 60.3%와 63.7%를 기록하며 반절을 훌쩍 넘겼습니다.

그러나 젊은 세대의 견해는 다소 달랐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20대 응답자 중 51.8%와 30대 중 49.0%는 '직장 갑질이 줄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갑질의 주체인 고위직이 비교적 많은 고연령대에선 갑질이 줄었다는 응답이 우세했지만, 대개 갑질을 당하는 편인 저연령대에선 상반된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직장갑질119는 "상명하복을 미덕으로 생각해온 60∼70년대생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들은 90년대생 회사원에게도 '라떼는(나 때는) 말이야'라며 갑질을 일삼고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직장갑질119

사회학 용어 중 ‘코호트(cohort)’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요즘 코로나 19 창궐 사태를 맞아 자주 언급되는 의학계의 ‘코호트(격리 등을 위해 특정 공간 내 인구를 하나의 집단으로 묶는 것)’와는 약간 다른데요. 사회학에서의 코호트는 비슷한 연령 시점에 특정한 역사적 경험을 함께한 집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흔히 말하는 ‘베이비붐 세대’나 ‘386 세대’ 등이 일종의 코호트죠.

이는 ‘시대’나 ‘연령’ 중 하나만으로는 인구집단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기인한 개념입니다. 따지고 보면 그리 놀랍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X세대’와 ‘88만원 세대’는 모두 당대의 20대 연령집단이었지만 그 성격은 판이하죠. 또한 2021년 현시점 기준으로 1960년대생과 1990년대생이 같은 직장에 매여 한 공간에서 사무를 보는 일은 그리 드물지 않지만, 그렇다 해서 이들을 동질적인 집단으로 묶어 보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있죠.

하지만 이론적으론 그리 어렵지도 않고 복잡할 것도 없는 이 개념이, 일상에선 의외로 너무나도 쉽게 간과되곤 합니다. 이를테면 임원진이 저연차 사원들의 재택근무 선호를 한탄하며 “내가 그들 나이 때엔 집보다 회사가 편했다”고 하거나, “업무를 집에서 보면 능률도 훨씬 떨어지고 성과도 나빠지는데 왜 그리도 재택을 고집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식이죠.

물론 임원진의 말은 사실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들의 코호트에만 한정한다면 말이죠. 하지만 특정 코호트에서 정답인 발언을 다른 코호트에 적용하면 잘못된 넘겨짚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연령대와 경험이 다른 코호트는 선호나 성향 또한 판이할 수 있으니까요.

내가 직장 생활에 만족하더라도, 부하 또한 같은 마음일까요?/게티이미지뱅크

예를 들어, 여론조사업체인 한국갤럽이 지난 4월 전국 만 25~54세 재택근무 경험자 367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35~44세는 58%, 45~54세는 59%가 재택근무를 했을 때 성과가 좋았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25~34세는 75%가 집에 머무르며 근무했을 때 성과가 좋았다고 응답했습니다. 재택 근무 만족도 역시 25~34세는 무려 90%에 달한 반면 35~54세는 66%에 그쳤습니다.

물론 코호트 사이에 장벽이 낮고 소통이 원활하다면 어느 정도는 문제 극복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아시다시피 대부분 직장에선 그저 요원한 이야기일 뿐이죠. 전은주 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지난 2015년 직장인 150명을 설문 조사해 발표한 ‘분야별 화법 분석 및 향상 방안 연구: 직장 내 대화법’에 따르면, 업무 보고 관련해 응답자 중 44%가 의사소통 갈등을 간혹 겪으며, 19.3%는 거의 매일 문제가 발생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사적인 대화 상황에서도 소통이 어렵긴 마찬가지였습니다. 42.7%는 직무와 무관한 대화에서도 가끔 갈등이 발생한다 응답했으며, 18%는 그 빈도가 잦은 편이라 말했습니다.

우리는 과연, 소통하고 있는 것일까요?/게티이미지뱅크

그렇다 해서 상급자 쪽에서 코호트 차이로 발생하는 소통 갈등 문제를 깊이 인식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상급자 쪽에서 자각이 덜하다는 조사 결과마저 존재합니다. 지난해 4월 대한상공회의소가 30개 대‧중견기업에 소속된 직장인 약 1만3000명을 조사해 발표한 ‘한국기업의 세대갈등과 기업문화 종합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세대 차이가 업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20대와 30대는 41.3%, 52.3%가 수긍한 반면 40대와 50대는 38.3%, 30.7%만이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이처럼 코호트 간 성향과 견해 차이가 뚜렷한데도 서로를 이해하거나 소통하려는 노력은 거의 없다 보니,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둘러싼 직장 문화는 서로 다르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해 6월 전국 만 19세~59세 직장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0 직장인 스트레스 및 번아웃 증후군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59.4%는 실제 감정을 숨기고 업무상 요구되는 감정을 꾸며서 표현한다고 답변했습니다. 대개는 하급자가 불만이 있어도 입을 다물고, 상급자 쪽에선 들리는 말이 없으니 상황을 실제보다 낙관적으로 보게 되죠. 맨 처음 언급한 사례에서도 나오듯, 40대 이상은 갑질이 줄었다 느끼지만 30대 이하에선 딱히 변한 것이 없다 느끼는 것처럼요.

그러니 중간관리자 이상 위치에서 보다 어린 세대를 지휘하시는 분이라면, 들려오는 불평이 달리 없다 해도 모두가 만족하고 있다 쉽사리 단정 지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람인 HR연구소는 “내 20~30대 시절을 미루어 생각해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지점에서, 젊은 사원들은 상당한 불만이나 고충을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부하의 침묵은 호재가 아닌 위기라 생각하며 늘 소통에 힘쓸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인 HR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