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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매거진

임직원 설문을 백날 하면 뭐하나 [더플랩]

2022-11-16

지난 1월,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공동으로 주관한 ‘용산공원 네이밍 공모전’ 최종 당선작으로 ‘용산공원’을 선정했다 밝혔습니다. 용산공원조성추진위원회는 “접수된 시민제안 9401건 중 전문가 심사와 온라인 선호도 조사를 합산한 종합 점수가 가장 높았던 ‘용산공원’을 최종 의결했다”며 “기존 명칭인 용산공원은 10여년간 사용돼 국민에게 친숙하고 부르기 쉬우며, 직관적으로 그 대상이 떠올려진다는 강점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용산공원 공식 블로그

요새는 어느 조직이건 듣기는 많이 듣습니다. 귀를 아주 막은 곳은 드물죠. 글로벌 회계법인 딜로이트가 지난 2016년 130여개국에서 HR리더 7096명을 설문해 작성한 ‘Global human capital trends’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 중 64%가량이 사내 설문 조사를 매년 하고 있다 응답했습니다. 아마존과 어도비, 구글, 아디다스 등에서 시행해 유명해진, 주기가 주간 내지 월간 정도로 짧은 사내 설문조사인 ‘펄스 서베이’(Pulse Survey)를 도입한 기업도 상당수고요.

하지만 경청이 곧 실행으로 이어진다 장담하긴 어렵습니다. 이미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답은 정해져 있고, 설문이나 공모는 사실상 구색 맞추기에 불과한 경우도 적지 않거든요. 앞서 언급한 용산공원 명칭 공모전이나, 지난 4월 5000여명이 참여해 아이디어를 냈지만 결국 ‘논산탑정호출렁다리’가 1위를 차지한 ‘탑정호 출렁다리 명칭 공모전’처럼요.

다수결조차 아니었습니다. 금상은 같은 명칭이 35건, 동상은 65건 접수됐거든요./논산시청 홈페이지 캡처

사실 다들 이미 잘 알고 계시듯, 대부분 조직에선 많은 결정이 그저 높으신 분들 마음 가는 대로 이루어지곤 합니다. 폭넓은 소통의 장이 마련되더라도 어지간해선 상사가 의지를 관철하는 데에 큰 장애가 되진 않죠. 이를테면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2017년 2월 상장사 직장인 약 1000명을 설문 조사해 발표한 ‘국내 기업의 회의문화 실태와 개선해법’ 보고서에서, 75.6%가 회의 때 ‘상사의 의견대로 결론이 난다’고 응답했다 밝혔습니다.

명분이 뚜렷하고 논리가 정연하면 윗선의 고집을 막을 수 있을까요.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하기까진 어렵지만, 아무튼 그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긴 합니다. 지난 2018년 12월 동일본 여객철도 주식회사는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에서 건설 중인 철도역 명칭을 타카나와게이트웨이(高輪ゲートウェイ)로 정했는데요. 사장을 비롯한 임원들로 구성된 사내 선정위원회는 후보에 오른 역명 1만3000여개 중 8398표를 받아 1위를 차지한 타카나와(高輪)를 제쳐 두고 36표를 얻어 130위에 머무른 타카나와게이트웨이를 골랐다 합니다. 6만4052표 중 타카나와게이트웨이가 차지한 지분은 0.056%에 불과했습니다. 선정위원회는 “이 지역은 에도 시대부터 현관문으로써 번성했던 지역이며, 메이지 시대에 지역을 잇는 철도가 개통된 유서 깊은 장소로서 앞으로도 도쿄의 중요 교통 거점이 될 것이므로 현관문을 의미하는 게이트웨이를 역명에 담았다”고 설명했습니다.

타카나와게이트웨이 역명 발표 현장./닛폰 테레비 뉴스

하지만 선정 직후 분개한 시민들이 철회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고, 무려 4만8000여명이 참여해 항의 의사를 표했습니다. 사실 이들도 무조건 1위 혹은 상위 득표 명칭 중에서 역명을 골라야 한다 말하진 않았습니다. 주변에 비슷한 역명이 있다거나, 이름에 연관성이나 상징성이 부족하다는 정도의 결격 사유는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만 이유가 어떻건 130위에 불과한 후보를, 그것도 굳이 길고 발음도 불편한 ‘게이트웨이’가 붙은 명칭을 택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선정위원회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이 역은 결국 지난해 3월 타카나와게이트웨이 현판을 달고 임시 개통식을 치렀습니다.

회사라는 곳들 또한 실제 분위기는 대개 이럴진대, ‘구성원 목소리를 듣겠다’며 수시로 행하는 타운홀 미팅이나 사내 설문조사가 기대만큼이나 효과를 낼 수 있을까요. 실제로도 많은 HR인들이 사실상 요식행위나 진배없는 ‘소통 활동’에 회의를 품고 있다 합니다. 영국 공인인력개발연구소(CIPD)가 2013년에 발표한 ‘Social media and employee voice: the current landscape’ 보고서에 따르면, HR 관련 직무에 종사하는 응답자 중 53%가 ‘구성원 설문 조사는 점차 사라질 것이다’고 전망했습니다. 문항은 많지만 목적은 모호한 데다, 실시한들 별다른 피드백도 없고 개선을 위한 후속 조치조차 미흡하니, 딱히 공들여 시행할 의미를 찾기 어렵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렇기에 진정으로 구성원과 소통하기를 바라는 조직이라면, ‘얼마나 귀를 기울이느냐’ 이상으로 ‘얼마나 귀를 열어두고 있느냐’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펄스 서베이에 버금갈 정도로 빈번하게 임직원들의 뜻을 묻건, 학계 최신 이론이 반영된 고급 설문 테크닉을 구사하건 애초에 귀가 막혀 있다면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요. 공연히 바쁜 사원들을 수고롭게 하고 불필요한 지출을 늘릴 뿐이죠.

즉, 우선 고쳐야 할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여론이 택한 개선책이 설령 회사 상층부의 뜻과 어긋나더라도 최대한 존중하고 받아들이겠다는 마음가짐을 갖춰 두고 설문을 해야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LG경제연구원은 2008년 발표한 ‘구성원 의식조사 어떻게 활용하나’ 리포트의 마지막 대목에서 이 점을 명료하게 짚어냈습니다. “선진 기업을 비롯한 다른 회사들도 다 하고 있기 때문에 구성원 의식조사(EOS)를 도입한 회사도 적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목적이 불분명한 EOS는 예산과 인력의 낭비일 뿐 아니라, 구성원들의 소중한 업무 시간을 빼앗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사람인 HR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