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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매거진

부장님께서 무슨 말을 하시는지 모르겠다 [더플랩]

2022-11-09

어느 날 문득 출근한 부장이 뭐라 뭐라 흥겹게 말하다 혼자 웃습니다. 그 뭐라 뭐라가 뭔지 여기에도 적어드리고 싶긴 한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글로 옮기질 못하겠습니다. 부원들의 건조하고 애매한 눈빛을 마주한 부장이 당황한 듯 말합니다. “야, MZ세대들은 이런 말 쓴다던데, 너희들 몰라?”

그렇습니다. 확실히 요즘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말)가 상당히 화제이긴 합니다. 각 기업에서 실무의 주축이 된 연령대인 만큼 주목도 많이 받고, 이들을 알고 파악하기 위한 노력도 각계 각지에서 끊이질 않죠. 하지만 나름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며 MZ세대를 깊이 배우고 이해하려 해도, 결국엔 세대 사이에 놓인 깊은 골과 높다란 장벽을 절감하며 좌절하게 되는 때가 적지 않습니다.

다른 세대를 제대로 이해하고 소통하려면, 낯선 외국의 문명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과정 이상으로 노력과 품을 들여야 합니다. 영어를 몇 마디 읊을 줄 안다 해서 곧장 잉글리시맨이 되는 것이 아니듯, 특정 세대를 파악하며 친밀해지는 과정에도 그들의 언어 사용 패턴이나 사고 흐름의 맥락 등을 바르게 읽어내고 능숙히 응용해 쓰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말을 MZ세대 신조어랍시고 대화 곳곳에 우격다짐으로 밀어 넣어봤자 젊은이들의 진심 어린 호응을 이끌어내긴 어렵다는 것이죠.

일본에서 영업 중인 한 ‘서울 컨셉 식당’인데요. ‘쩔어’도 ‘서울’도 한국에서 실제 쓰는 말이며 ‘쩔어 서울’ 또한 아주 못 쓸 말이라 치부하기까진 어렵겠지만, 그래도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오묘한 어색함을 느낄 것입니다. 내가 속하지 않은 문화권을 깊이 이해하며 자연스럽게 따르기가 이렇게나 어렵다는 거죠./MBS News

그런 면에서 어지간하면 피해야 할 MZ세대 학습 경로가 있습니다. 바로 매스컴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입니다. 숱한 매체에선 MZ세대를 말하고 그들 사이에서 통하는 신조어를 소개하지만, 사실 그 중엔 MZ세대조차 대다수가 모르거나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표현 혹은 어휘가 의외로 꽤 많습니다.

예를 들어, ‘마싸’라는 신조어를 아시는지요? 많은 언론에선 이를 인싸(인사이더)도 아싸(아웃사이더)도 아닌, 유행이나 남의 말에 좌우되지 않는 ‘마이 사이더’를 일컫는 말이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이 신조어를 일상에서 쓰는 사람을 보진 못하셨을 겁니다. 온라인에서건 오프라인에서건 말이죠. 실제로 인터넷을 뒤져도 ‘마싸’를 ‘마이 사이더’ 의미로 언급한 콘텐츠는 언론사에서 내놓은 글이나 영상뿐입니다.

‘갑통알’이라는 말은 들어 보셨을지요? ‘갑자기 통장을 보니 알바 해야할 것 같음’의 줄임말이라 합니다. MZ세대인 동시에 글로 먹고 살아온 세월이 10년 가까이 되는 저마저도, 생전 처음 보는 표현인 것은 둘째 치고라도, 어떻게 하면 이 신조어를 작문이나 대화에서 위화감 없이 자연스레 집어넣을 수 있을지 도통 감이 잡히질 않습니다. 주변에서도 이를 실생활에서 무던하게 쓰는 사례를 보질 못했고요.

이처럼 현실에선 널리 쓰이진 않음에도 매스컴을 떠도는 신조어는, 애초에 태생부터가 인공적이었던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개는 기자가 기사 한 꼭지를 만들기 위해, 작가가 코너 하나를 메우기 위해 새 말을 손수 생성해낸 것이죠. 그리고선 그렇게 만들어진 어휘를 담은 기사, 방송 캡처, 보도자료 등이 매스컴 사이에서 자전거래되며 대중의 언어 활동과는 무관하게 신조어로 알려지는 것이고요.

과거에는 매스컴이 한글날 즈음에 ‘허수아비 때리기’를 할 목적으로 가짜 신조어를 만들거나 조망하는 일이 많았지만, 세대론이나 인터넷의 언어 오염 이슈가 흔히 제기되는 요즘엔 딱히 때를 가리지 않고 각종 매체에서 ‘억지 신조어’를 뽑아내곤 합니다. 출퇴근길에 뉴스 기사와 유튜브를 보며 요즘 젊은것들을 배우던 분들은 속절없이 이를 요즘 세대에서 실제 쓰는 표현으로 오인해, 청년들을 마주한 자리에서 애써 익힌 그 말들을 툭툭 던져보죠. 귀여운 꼬마들은 그 꼴을 보고 웃을까 울을까 망설이게 되고요.

실생활에 쓰는 신조어를 제대로 알아보고 외우더라도 난관이 모두 사라지진 않습니다. 습득한 어휘를 딱 들어맞는 상황에 적절히 쓰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상황과 타이밍을 잘못 재고서 시도 때도 없이 마구 들이밀면, 외국인에게 무작정 김치를 먹이려 들거나 두 유 노 봉준호 멘트를 던지는 상황만큼이나 어색하고 불편한 기류가 흐르게 되겠죠.

특정 언어와 문화권을 깊이 이해해야만 알맞은 어휘를 적절한 맥락에 쓸 수 있게 됩니다. 남의 언어를 무작정 사용한들 그들과 진정 함께하고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는 것이죠./네이트판 캡처

사실 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MZ세대와의 소통이 외국 문화의 이해만큼이나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그저 MZ세대를 오로지 ‘매스컴을 통해서만’ 배우지 말라는 취지에서 하는 소리일 뿐입니다. 병법을 글로만 습득해 요충지를 버리고 가정에서 산을 탄 마속이나, 연애를 글로만 접한 탓에 어스름할 즈음이면 누군가에게 읽는 사람마저 수치스러워지는 카톡을 끊임없이 보내는 새내기 대학생 같은 꼴이 되는 것만큼은 피하자는 취지죠.

MZ세대의 말을 많이 들어 주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젊은이들의 반응을 면밀히 관찰하다 보면, 분명 그들의 선호와 원하는 바가 조금씩 드러나 보일 것입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글이나 영상으로 배우던 시절보다 훨씬 능숙하게 MZ세대의 언어로 대화할 수도 있게 될 테고요. 결국엔 이론보다는 실전이라는 것이죠.

다만 MZ세대를 거느리거나 지휘하는 분이라면,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진심을 드러내기 어렵다는 점은 고려해 주셔야 할 것입니다. 이를 간과하고서 본인이 어린 직원들과 굉장히 잘 소통하고 있다 생각하는 분들이 종종 있거든요. 실제로는 젊은이들 쪽에서 위계에 눌려 적당히 맞춰 주는 것에 불과할 뿐인데 말이죠. 그러니 한 번쯤은 주변의 MZ세대에게 솔직히 말해 달라며 터놓고 묻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이끌어낸 답변도 ‘이미 잘하고 계신다’는 내용이면 더할 나위 없으며, ‘실은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는 식의 답이 나온다면 그때부터라도 노력해 고쳐 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정말 놀랍더군. 준장으로 진급하자 내 유머 감각이 굉장히 탁월해졌다네. 이제 내가 농담을 한마디 던지면 모두 웃어 대니 말이지.” – 짐 보트너 미 육군 예비역 소장. 지위에 따라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지는 것은 세상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U.S. National Archives

/사람인 HR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