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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매거진

조직 몰입, 관계가 아니라 일이 즐거워야 한다

2018-09-10


 

우리가 흔하게 듣는 말 중에 "일 힘든 건 참아도, 사람 싫은 것은 못 참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와 유사하게 영어권에서도 "사람들은 일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보스를 그만두는 것이다(People don't quit a job, they quity a boss)"라는 말이 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서구사회나 우리나라나 직장 생활하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일 자체가 힘들거나 싫어서가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 특히 직속상사와의 관계가 불편한 경우에 직장생활을 더 힘들어 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까지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탁월한 인재는 사람이 아니라 일 때문에 퇴사한다

그런데 얼마 전 세계적인 IT 거대기업인 페이스북의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조직 몰입도 조사에서 일반적인 생각과 정반대인 결과가 도출됐다. 탁월한 인재들이 회사를 그만두는 이유는 사람 때문이 아니라 일 자체라는 사실이었다. 아마도 몇몇 사람들은 그건 미국 이야기이고, 페이스북이니까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또 몇몇 사람들은 결국 일을 하기 싫게 만드는 것 또한 직속상사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다 맞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조사 결과는 우리가 그동안 조직의 몰입을 바라볼 때 지나치게 관계적인 측면만 강조하고, 일 자체를 어떻게 하면 더 흥미롭게 그리고 더 몰입할 수 있게 바꿔 나갈 것인가에는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또한 이것은 우리나라 기업들을 대상으로 하는 조직문화 진단의 과정에서 필자가 종종 경험했던 몇몇 사례들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조직문화 진단의 과정에서 "당신이 자신의 일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나 시급하게 개선돼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가장 많이 나오는 의견이 평가보상과 리더십이다. 이것은 주관식으로 질문할 때나 다수의 선택지를 제공하는 객관식으로 질문할 때나 거의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설문결과를 체계적으로 분석해보면 구성원들의 몰입이나 만족도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평가보상이나 리더십이 아니라 '업무 프로세스'인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직 몰입, 민첩성과 적응성 촉구를 위해 반드시 필요

조직 몰입은 구성원들이 자신의 조직에 깊은 애착과 소속감을 가지고 조직의 목적과 성과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주도성과 창조성을 발휘하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는 것을 말한다. 변화가 일상이 되어버린 우리시대에 조직적인 관점에서 조직 몰입은 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제조건인 조직적인 민첩성과 적응성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선행돼야 하는 것이다. 또한 구성원 개인관점에서도 제한된 시간 안에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에서 최대의 성과를 창출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삶에서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도 반드시 선행돼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정서적인 노력과 제도적인 개선노력을 통해서도 조직몰입을 이끌어낼 수 있지만 구성원들이 자신의 일을 보다 더 즐겁고 의미 있게 느낄 수 있도록 일 자체를 바꿔가는 노력들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조직몰입을 위해 일 자체를 보다 즐겁고 의미 있게 만들어가는 방안으로 업무 프로세스를 재설계하는 노력과 팀 리더의 리더십 관점에서의 노력으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일 자체에 의미를 만드는 방법

업무 프로세스 재설계

기존의 업무혁신이 일의 효율성이라는 관점에서 이뤄져 왔다면 조직몰입을 위한 업무프로세스 재설계의 노력은 효율성이나 효과성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구성원들이 일속에서 일의 즐거움과 의미를 느낄 수 있게 할 수 있을까"라는 관점에서 현재의 업무를 들여다보고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하거나 재설계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일의 즐거움과 의미를 높이기 위한 업무 프로세스 설계에는 다양한 이론적인 접근들이 있다. 그 중에서 개인이나 단위조직 수준에서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일반론적인 방안으로 퍼포먼스 사이클Performance Cycle이라는 방법론이 있다. 퍼포먼스 사이클은 영향력 논리Theory of impact, 자극Inspiration, 우선순위Prioritization and Planning, 실행Performing, 성찰Reflection 이라는 5단계 순환 고리의 방법을 통해 일하는 방식을 혁신해 나갈 수 있다.

 

1단계 영향력 논리는 구성원 개인이나 단위조직이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개별적인 업무들이 어떤 영향력을 조직이나 고객, 세상에 발휘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이를 스스로 논리적이고 구조적으로 정의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이렇게 정의된 영향력 논리는 퍼포먼스 사이클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구성원의 성장과 단위조직의 역량이 확대됨에 따라 지속적으로 확장될 수 있다. 자신의 일의 영향력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구성원의 일의 즐거움과 의미를 자극한다. 또한 업무 프로세스가 구성원 개인이 일상의 업무 속에서 영향력의 논리를 스스로 인지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어야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몰입이 가능해진다.

 

2단계 자극은 구성원 개인이나 단위조직이 일하는 과정에서 자신들만의 아이디어를 낼 수 밖에 없도록 하는 업무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것을 말한다. 아이디어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호기심은 즐거움 동기를 북돋는다. 구성원들이 자신의 일에 대한 영향력 논리를 가지고 있고, 실험정신을 발휘할 만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퍼포먼스 사이클은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3단계 우선순위는 단순히 어떤 일을 먼저 해야 하는지, 또는 나중에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만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퍼포먼스 사이클에서의 우선순위는 어떤 일이 전체의 동의와 합의가 있어야 하는 일인지 그리고 어떤 일이 빠르게 실행돼야 하고, 설사 그 과정에서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도하면 되는 일인지를 명확히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군에서 사용하는 전투함의 외벽에는 일반적으로 워터라인이라는 선이 그려져 있다. 전투 중에 워터라인 위에 총알이 맞을 때는 큰 문제없이 전투를 지속할 수 있지만 워터라인 아래에 총알이 맞으면 위험한 상황이 된다. 퍼포먼스 사이클은 업무에 대해 명확한 워터라인을 제시하고 지속적으로 워터라인을 낮추려는 조직적인 노력을 통해 구성원들이 자신의 의사결정에 대한 영향력을 인식하도록 하는 활동이다.

 

4단계 실행은 일상적인 업무 프로세스 안에 구성원들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실험하고 배울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일종의 플레이 그라운드를 마련하는 것을 말한다. 플레이 그라운드는 빈백Bean Bag이 있는 회의실이나 수영장 있는 휴게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구성원들이 자신이 맡은 특정업무를 수행할 때 마음껏 실험할 자유가 있고,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무엇인가 배운 것이 있다면 성과로 인정한다는 명확한 조직적인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것을 말한다.

 

5단계 성찰은 구성원 개인이나 단위조직이 자신이 수행한 일이 예상한 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것을 말한다. 조직이 목표를 달성했을 때 그 일에 참여한 구성원들과 단위조직이 자신이 수행한 일들의 단순한 결과만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한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을 때 일의 즐거움과 동기가 높아질 뿐만 아니라 자신의 업무에 대한 영향력 논리를 스스로 확장하게 되는 선순환의 퍼포먼스 사이클이 형성된다.

 

팀 리더의 리더십 관점에서의 노력

조직몰입을 위해 일 자체를 보다 즐겁고 의미 있게 만들어가기 위한 두 번째 방안으로 팀 리더의 리더십 관점에서의 노력을 생각해볼 수 있다. 퍼포먼스 사이클과 같은 도구들을 활용해 구성원들이 자신의 일을 보다 즐겁고 의미 있게 느낄 수 있도록 업무 프로세스를 재설계하는 일은 구성원 개개인의 자발적인 노력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리더의 도움이나 지원 없이는 근본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 앞서 소개했던 페이스북의 몰입도 조사연구를 이끌었던 아담 그랜트Adam Grant 와튼스쿨 교수는 구성원들이 일을 즐겁고 의미 있게 느낄 수 있도록 업무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리더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팀 리더는 자신의 영향력 내에 있는 구성원이 스스로 자신의 업무에 퍼포먼스 사이클을 구축하도록 안내하고, 그 과정 속에서 지속적인 피드백을 통해 생각을 확장하도록 촉진하고, 구성원의 퍼포먼스 사이클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대내외적인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

 

조직몰입을 강화하는 팀 리더의 역할은 퍼포먼스 사이클을 구축하는 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아담 그랜트 교수는 구성원들이 일을 즐기고 의미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리더의 구체적인 역할로 구성원들이 자신의 강점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을 강조한다. 팀 리더는 새로운 구성원이 자신의 조직에 합류할 때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업무의 과정에서 상시적인 질문과 대화를 통해 구성원 개개인이 어떤 부분에서 일의 즐거움을 느끼는지 그리고 어떤 강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일상적으로 파악하고, 이러한 구성원 개개인의 선호나 강점을 업무 속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나치게 세분화되고 개별화된 업무정의는 이러한 기회를 만드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높은 수준의 개별적인 전문성을 요구하는 업무특성이나 반대로 기능적으로 반복되는 업무특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구성원 개개인의 업무가 세분화되고 개별화되어 있는 상황이더라도 구성원의 선호와 강점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개별업무 범위 내에서만 만들어 내는 것은 다분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구성원들이 개개인의 독립적인 업무들이 명확히 구분돼 있는 경우라더라도 팀의 목표와 성과를 창출하기 위한 포괄적인 업무들도 자신들의 업무라는 인식을 유지하도록 조장하면, 구성원들 사이의 긍정적인 상호의존성이 높아짐으로써 협력이 성과를 이끌어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구성원 개개인들의 강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그만큼 더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러한 기회를 만들어 내는 일을 리더 자신의 고유의 업무로만 한정짓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팀의 구성원들이 서로의 선호와 강점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면 공식적인 기회뿐만 아니라 비공식적인 기회들까지도 구성원 사이의 자연스러운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 이것은 리더가 자신이 파악하고 있는 구성원 개개인의 선호와 강점을 구성원에게 공유하는 소극적인 단계에서부터 구성원들이 필요시에 언제든지 서로의 선호와 강점을 확인할 수 있도록 공식적으로 이를 디스플레이 하는 수준까지, 그리고 더 나아가 지속적으로 구성원들 간의 질문과 대화를 통해 서로의 선호와 강점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조직정서를 조장하는 단계까지 시도해볼 수 있다.

 

또한 업무의 특성이나 조직적인 특성에 따라 조금 다를 수는 있지만 이러한 기회의 창출은 팀의 경제를 넘어서 외부로도 확장될 수 있다. 리더가 구성원 개인의 선호와 강점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자신의 조직 외부까지로 확장할 경우, 그것이 여전히 회사라는 범위 안에 있다고 한다면 궁극적으로 조직의 목적을 더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또 하나의 방안이 되므로 좋은 일이고, 반대로 그것이 회사의 범위를 벗어나더라도 구성원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길이므로 좋은 일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해당 구성원들이 리더가 진심으로 자신을 돕는 사람이라는 신뢰와 조직이 자신의 성장을 우선한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팀 리더의 역할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목적중심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다. 구성원들이 자신이 소속된 조직의 모든 의사결정과 우선순위가 단기적인 이익이나 필요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가치 있는 목적을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확신을 가질 때 구성원들은 진심으로 일을 즐기고 몰입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리더는 자신의 영향력 하에 있는 조직의 목적을 명확히 정의하고 이것이 회사전체의 목적과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구성원들에게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동시에 구성원들이 자신의 일이 어떻게 팀의 목적과 더 나아가 회사전체의 목적과 연결돼 가는지를 날마다 느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조직몰입은 리더가 구성원들에게 친절을 베풀거나 인간적으로 가까워지는 것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즐길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자신의 일이 즐겁고 의미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이 조금은 싫어도 견딜 수 있다. 내가 하는 일이 즐겁고 의미 있다고 느낀다면 그 일을 함께 하고 있거나 최소한 도움을 주고 있는 사람들이 싫다고 느껴지는 경우는 흔하지 않을 것이다. 

 

유준희 조직문화 공작소, AIPU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