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자소서 1건

기획·전략·경영

수협중앙회 2015년 하반기 신입 및 경력직원 채용

  • # 성장과정
  • # 생활신조/좌우명
  • # 학교생활
  • # 직무경험/경력
  • # 지원동기
  • # 입사 후 포부
Q1 성장과정
A1
힘이 강하거나,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과는 친하게 지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약하거나, 공부를 못 하는 친구들과는 자연스레 거리를 뒀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가끔은 이런 친구들을 괴롭히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약았습니다.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사실 이런 생활이 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습니다.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저 또한 가끔은 함께 괴롭히곤 했습니다. 그 친구의 부모님께서 교육청에 연락했고, 학교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저는 주동 인물에서 제외됐지만, 부모님께는 솔직히 말씀드렸습니다.
제 이야기를 묵묵히 들으시던 부모님께선, 저에게 체벌을 가하셨습니다. 놀랐습니다.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해도, 값비싼 물건을 망가뜨려도 체벌을 받은 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체벌 후에 ‘약자를 보호해야지, 강자 편에서 방관하거나 가담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곤 하셨습니다. 그리고 먼저 괴롭힘을 당한 친구에게 사과하라곤 하셨습니다.
딱히 내키지 않는 사과였고, 친구가 받아들이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흔쾌히 받아줬습니다. 오히려 자신은 문제삼고 싶지 않았다며 저에게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부모님의 체벌로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던 터에, 이런 말을 들으니 양심에 큰 가책을 느꼈습니다. 그간 제가 얼마나 약은 사람이었는지 반성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저의 신념은 바뀌었습니다. 지난날을 반성하며, ‘약자를 위하자’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첨삭결과 솔직한 이야기 좋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한 마음가짐의 변화를 잘 작성하셨습니다. 다만 이것이 지원한 부문에 잘 맞는 이야기로 결론을 내려 업무수행과 연결시켰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Q2 성격 및 생활신조
A1
두 가지 좌우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어제의 나에게 지지 말자’입니다.
일정 수준의 학업이나 운동 능력을 성취하면, 여기에 만족했습니다. 더 이상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저에 비해 우수한 친구들보다, 뒤처진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몇 달, 몇 년이 지나자 친구들은 앞으로 달려나갔습니다. 공부를 정말 못하는 친구와 같은 시험 성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한 손으로 농구를 해도 이기는 친구에게, 처참히 지기도 했습니다. 충격을 받고, 나태한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괄목상대’의 자세를 가지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의 일과에 있어 잘한 점, 잘못한 점, 개선해야 할 점 모두 적었습니다. 그리고 매주 이 일기를 검토하며, 주 단위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계획했습니다. 성과가 있었습니다. 학과 5등이던 성적은, 단과대학 2위의 성적까지 뛰어올랐습니다. 농구 실력도 향상됐습니다. 외부 대회에서 4강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어제의 나에게 지지 말자’고 생각하며,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면접장에서의 저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저보다 더 뛰어난 사람으로 있을 것이라 장담합니다.
둘째, ‘할 말은 하자’입니다. 약았던 지난날의 단점 중 하나는 제 의견을 잘 표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주위에 묻어가며, 의사 표현을 잘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곤 시간이 지나면 '왜 말을 하지 않았을까'하곤 후회했습니다. 그러기에 소신을 갖춰 말하는 연습을 했고, '할 말은 꼭 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첨삭결과 좋습니다. 특히 둘째의 말 할은 하자가 1번 항목과 은근히 통일성을 갖춰 신뢰도를 높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3 학창시절
A1
대학에 입학 후, 앞서 말한 ‘약자를 위하자’는 마음으로 생활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주류 학생들끼리만 어울리고, 비주류 학생들은 배척하는 학과의 모습이 싫었습니다. 저의 지난날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비주류 학생들을 위해 바꾸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욕을 먹기에 기피하는 학과 회장에 출마해 당선됐습니다.
학과 회장 업무에 임하면서, 모두가 함께하는 학과를 만들려 노력했습니다.
먼저, 연합MT나 체육 행사에서의 조원 배치를 임의로 선정했습니다. 기존에는 주류 학생들끼리 조를 편성하고, 비주류학생들만 모아서 조를 편성해 ‘따로 노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술만 마시던 축제를 축소하고 과감하게 문화제를 기획했습니다. 재학생 모두가 하나 이상의 공연을 해야 한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공연의 조 또한 임의로 편성했습니다. 반발이 많았지만, 모두가 참여하는 문화제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문화제 이후, 주류와 비주류의 구분없는 학과의 분위기를 만들게 됐습니다.
이런 ‘약자를 위하자’는 마음은 봉사활동으로도 확대됐습니다.
가장 시간을 덜 들이고 할 수 있는 일은 헌혈이었습니다. 2주에 한 번씩 한 시간의 시간을 투자해 시작한 헌혈은 60번을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해 공부방으로 봉사를 한지 3년 째입니다. 마지막으로 미약하나마 한 달에 3만 원씩 용돈을 모아 유니세프에 후원 중입니다.
첨삭결과 봉사에 집중하고 모두의 화합을 추구하는 것은 좋습니다. 다만 사업부문에 있어 자신 또는 조직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작성하는 것을 권합니다. 본문 상의 학과 문화제 이야기를 하면서 학과 사람들이 어떻게 변했는지 그 결과에 대해 이야기해준다면 이런 문제를 보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4 경력사항(상벌사항 포함)
A1
한 광고 회사의 인턴으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주 업무는 단순한 사무 보조 업무였습니다. 회사의 분위기 이외엔 배울 것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부장님의 배려로, 가끔은 기획 회의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기회에, 다른 인턴들은 눈치를 보며 회의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답답했습니다. 자기의 의견을 과감히 말하고, 거기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기회를 버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턴 중에 저만은 회의에 열정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간혹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의견이나, 모순이 존재하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 의견이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 수 기회였기에, 많은 것을 배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받아들여져 제대로 추진된 제안도 있었습니다.
발상의 전환으로 신선하게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주제였습니다. 포괄적인 범위였기에 다양한 의견이 오가고, 회의 시간도 길었습니다. 여기에 저는 ‘유명한 악역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를 제안했습니다. 예시로 ‘글레디에이터’의 악역 코모두스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해 사랑을 갈구하는 불쌍한 코모두스의 심리 표현을 얘기했습니다. 다들 괜찮다고 생각하며 이 제안을 다듬고, 추진했습니다. 그리고 ‘인턴이 직원보다 더 열정적이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광고 또한 ‘대박’은 치지 못했지만, 색다른 접근으로 ‘중박’의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첨삭결과 소재도 좋고, 통일성이 있으며 자신의 적극성을 어필하기에 좋았습니다. 다만 두가지가 아쉽습니다. 굳이 중박을 쳤다는 이야기를 하지 말고 직원들의 지지를 받으며 프로젝트로 선정됐다는 이야기까지만 써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둘째는 이런 자신의 성격이 지원분야에 어떤 도움이 될지를 서술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약간의 보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Q5 지원동기
A1
처음에는 단순히 ‘약자를 도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봉사단체에 들어가기엔 수익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대부분의 기업이 ‘사회적 기업’이라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잠시 진로에 대해 방황을 했습니다.
그간의 생활을 되돌아봤습니다. 가장 즐긴 일을 찾아보니, ‘밥 블로거’ 활동을 한 것입니다. 그냥 블로그에 하루 세끼 무엇을 먹든 그 메뉴를 찍고, 올리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심심풀이로 시작했지만, 제가 올린 게시글에 사람들이 메뉴에 대한 의견을 토론하면서 블로그는 크게 활성화됐습니다.
해산물을 즐겨 먹고, 사진을 올렸습니다. 구독자들은 댓글로 저에게 ‘군소’를 추천하기도 했습니다. 명란젓을 올리자, 국내산 명태는 잡히지 않기에 ‘국내산 명란젓’은 존재할 수 없다곤 했습니다. 이런 과정이 즐거웠습니다.
이런 블로거 활동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수산물에 관련된 일을 함과 더불어 ‘약자를 도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게 됐습니다. 그 길에는 수협중앙회가 있었습니다. 수협중앙회는 상대적으로 약자인 어업인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치는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협중앙회에 지원했습니다. 수협중앙회에서 어업인을 돕고 싶습니다. 그리고 '소비자와 어업인을 잇는 연결 Bridge'의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첨삭결과 3번째 문단은 군더더기 같습니다. 이미 블로그에 관한 이야기는 2문단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또한 1문단에서 사회적 기업을 찾는다고 했는데, 이는 지원동기상의 무리가 있습니다. 이미 좀 더 적극적인 사회적 기업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Q6 입사 후 포부
A1
첫째, ‘어부’가 아닌 어업인’을 만들겠습니다.
농촌도 마찬가지지만, 어촌 또한 청년들이 기피하는 분야입니다. 오히려 농촌보다도 더 기피하기에 ‘귀농’은 있지만 ‘귀어’라는 말은 아직 익숙하지 않습니다. 이런 어촌의 현실을 개선하도록 하겠습니다. 대학교 및 직업학교와 연계한 어촌 직업이수 체험프로그램을 만들어, ‘어부’가 아닌 ‘어업인’의 이미지를 심겠습니다.
둘째, 해산물의 안전을 홍보하겠습니다.
우리네 밥상에는 해산물이 필수입니다. 김치만 하더라도 젓갈로 담급니다. 가정의 반찬에는 생선구이나 생선조림이 올라옵니다. 육수를 내기 위해 멸치와 다시마를 씁니다. 국에는 조개를 넣어 감칠맛을 냅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우리나라에 큰 공포로 다가온 이유 중 하나도 해산물의 안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원전 사태 직후, 해산물 판매량은 20% 이상 급감했습니다. 그만큼 해산물은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해산물의 안전 홍보가 중요합니다. 원전 사고 지역의 해류가, 현재 우리나라 연근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자료를 중점으로 홍보를 꾀하겠습니다. ‘믿을 수 있는 수산물’을 알리겠습니다.
셋째, 다양한 지원 방안으로 어업인들의 삶이 더 나아지도록 하겠습니다. 어업은 안정적이지 못합니다. 그물과 연료 비용 등 수백만 원 이상을 한 번의 조업에 투자하기 때문입니다. 어획량이 적다면, 고스란히 손해로 다가옵니다. 그러기에 '그물 보험 제정안', '어장 공동 생산 예약제' 등을 제안해 안정적인 어업을 이루도록 하겠습니다.
첨삭결과 입사 후 포부를 묻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자신이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느냐에 대한 질문입니다. 작성하신 내용은 입사 지원자의 글보다 선거 후보자의 공약에 가까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