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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매거진

일의 즐거움과 의미가 중요하지 않은 일이 있을까?

2020-10-13

 

 

 

 

 

 

유준희 조직문화 공작소, AIPU 대표

 

필자는 그동안 오늘날을 비롯한 앞으로의 시대는 기하급수적인 변화가 일상화될 것이라고 수도 없이 말해왔으며, 기업이 이러한 변화 속에서 지속적인 경쟁력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조직 차원의 적응성과 유연함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피력해 왔다. 또한 이러한 조직 속의 개인은 주도성과 창의성, 열정적 헌신과 같은 인간이 가진 본연적 역량을 발현할 필요가 있음을 소개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 본연적 역량은 누군가가 지시-전달, 강요하거나 학습한다고 확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로지 그 개인이 자신이 하는 일, 그리고 조직이 하는 일이 즐겁고 의미 있음을 체감하고 확신할 때 자연적으로 발현됨을 소개해왔다. 다시 말해 일 자체가 가지는 즐거움과 의미를 체감하고 확신할 수 있는 조직문화가, 기하급수적 변화가 일상화되는 이 시대의 경쟁력, 그 자체가 될 것임을 말해왔다.

의미가 없는 일이란 없다 
하지만 필자는 그동안 조직문화 진단, 조직개발과 같은 많은 조직문화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주무조직 뿐만 아니라, 프로젝트 수행 대상이었던 리더나 구성원으로부터 가끔 이러한 말들을 들을 때가 있었다

"
뭔가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즐거움이나 의미가 필요할지 몰라도, 우리는 고정된 일을 안정적으로 수행하는 게 중요한 사람들이다."

"
우리가 하는 일은 루틴하고, 반복적이라 즐거움이나 의미를 느끼기가 힘들다."

"
우리 일에서는 특별히 주도성이나 창의성을 발휘할 만한 것이 없다."

"
그러므로 일의 즐거움이나 의미보다는 차라리 인센티브나 급여 수준을 높여주고, 복리후생을 잘 챙겨주는 것이 차라리 일에 좀 더 몰입하게 할 것 같다."

이러한 말들을 할 조직이나 기업, 사람들은 어떤 기업이나 조직일지 머릿속에 그려지는가. 단순 반복적이고 각자 명확하게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면서, 시간당 얼마나 동일 작업을 반복하느냐가 성과를 결정하는, 생산조직이나 제조기반 기업들의 이미지를 많이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 이미지 속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일정 부분 동의하는 이들 또한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묻고 싶다.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정말로, 루틴하고 반복적인 일을 하는 이들에게는 어떠한 주도성이나 창의성도 필요하지 않다고 믿는가? 정말로 일의 즐거움이나 의미가 이들에게는 물질적인 이익이나 보상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사실, 이론적으로야 일의 즐거움과 의미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테레사 아마빌레의 연구에서든, 린지 맥그리거와 닐 도쉬의 사례에서든, 프레데릭 허쯔버그의 동기-위생이론이든, 게리 하멜의 인간역량계층모델이든 즐거움이나 의미와 같은 일의 내적인 동기가 왜 중요한지 설명할 거리야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저 말을 했던 구성원들이 이러한 이론을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니기에, 필자는 재미있는 일화 하나로 필자의 생각을 전하고자 한다

<어느 용접공의 이야기
한 오래된 용접공이 있었다. 그는 용접일만 20년 가까이 한, 용접에 있어서만큼은 베테랑이었다. 그의 주요 업무는 엔지니어가 설계한 도면대로 용접을 하는 일이었고, 매일 정해진 공정대로, 정해진 목표대로 용접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목표량도, 용접해야 할 대상도, 내부의 기획조직과 엔지니어들이 정하고 가이드하는 대로만 하면 되는, 흔히 말해 주어진 대로 묵묵히 일만 하면 되는, 그런 일이었다.

세월을 먹고, 일을 하면 할수록 온갖 제품들을 용접하면서, 어떤 제품은 어떻게 용접하면 되는지 노하우는 쌓여가고, 보수는 올라갔지만 그렇다고 용접이라는 일, 역할이 변화될 일은 기업에 새로운 직무로 취직하지 않는 한 일어날 일이 없는, 흔히 기술직, 생산직이라 불리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용접공에게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 여느 날처럼 용접을 하려고 작업장에 와서 일을 하던 중에 갑자기 작업을 멈춘 것이다. 그리고는 갑자기 작업장에서 벗어나서 부랴부랴 현장관리를 위해 나와 있던 구성원을 부르더니, 엔지니어를 불러 달라는 요청을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저 이대로 하는 게 맞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현장관리자 입장에서는 작업장과 엔지니어들이 근무하는 건물 간 거리도 거리거니와 (족히 1시간은 잡아먹는다) 단순히 무언가 물어볼 요량이라면 굳이 엔지니어가 여기까지 올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용접공에게 궁금한 게 무엇인지 알려주면 본인이 엔지니어에게 전달해 줄 테니, 일단 도면대로 작업을 수행해서 공기에 문제가 없도록 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용접공은 '급한 거니 엔지니어를 좀 데려와 달라'는 요청만을 반복했다

현장관리자로서는 버티는 용접공이 오랜 시간 일을 한 베테랑이기도 했거니와 저렇게까지 요청을 하는데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일단은 엔지니어와 통화를 하도록 해줬다. 엔지니어와 연결이 되자, 용접공에게 전화를 넘겼는데, 용접공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해서 관리자를 놀라게 했다

'
이거 이대로 하면 안 될 거 같은데, 반대로 하는 게 맞는 거 같은데…'

그리고 뭔가 옥신각신하더니, 시간이 지나 엔지니어가 도착했고, 두 사람은 도면과 작업장을 번갈아 보다가, 엔지니어는 돌아갔고, 용접공은 그제야 작업을 시작했다. 정확히 본래 도면과 반대로 용접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중에야 엔지니어의 설계도면에 오류가 있었고, 용접공의 말이 맞은 것으로 밝혀졌다. 블록식으로 작업하고, 결합하는 방식의 물건들 중 가장 안쪽에 자리해야 하는 물건인지라, 만일 용접공이 설계도면대로 만들었다면, 다시 떼어내고 재작업을 하느라 공기가 얼마나 늘었을지 아찔한 순간이었다

누구나 가져야 하는 일의 의미와 그 힘 
필자가 소개한 이 일화는 실제로 필자가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과정 속에서 우연히 알게 된 어느 한 기업에서 있었던 실제 이야기이다. 당시 이 일화를 소개해준 직원은 필자에게 이 용접공의 행동을 얘기하며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라 소개했는데, 이유인즉 기업에서 이러한 행동을 하게끔 특별히 교육하거나 가르친 적도 없거니와 애초에 용접공에게 원했던 것은 주어진 설계 도면대로 빨리 빨리 작업할 것과 작업한 양만큼 보상이 주어지는 것뿐이었다는 점이다

앞서 필자가 들었던 말대로 소개하자면 '고정된 일을 안정적으로 수행하는 게 중요한, 루틴하고 반복적인 일'이었고, '어떠한 주도성이나 창의성도 필요하지 않은 일'이었고, '그러한 일'로 인식되도록 가르쳤고, 교육했으며, 보상 또한 '그러한 일'로 느껴지도록 한 만큼 주는 방식이었다는 얘기이다. , 용접공이 갑자기 그런 행동을 한다고 해서, 용접공 본인에게 득이 될 것은 없었으며 오히려 작업을 멈춘 시간만큼, 그날의 목표량을 달성하기 위해 더 시간을 들여야만 했던 '본인에게는 손해'인 시간이었다. 심지어 공학적 지식도 없이, 그저 단순히 오랜 시간 용접한 그의 경험과 감에 판단해서 엔지니어를 데려와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자칫 주변 이들에게 괜한 비웃음과 소문거리를 만들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는 왜 그렇게 했을까? 해답은 이 일화를 알려준 직원의 마지막 말에 존재했다.

"
그 용접공이 그랬던 이유는 정말로 그냥 감이었지만, 그냥 이래서는 제품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에, 이대로 하는 게 정말 맞는 건가, 엔지니어가 실수한 게 아닐까 생각해서였다고 합니다. 실수였다면 그저 반대로 하면 되는 일이고, 실수가 아니라면 시킨 대로 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그냥 맞겠거니 하고 하면 나중에 큰 일이 생길 거 같아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용접공 입장에서는 일이 잘못되면 어차피 추가로 용접하면 되는 일이니까, 돈을 더 벌면 벌었지, 자기에게 득 될 일이 없었던 건데 말이죠. 그게 흥미로웠단 말입니다."

용접공으로서의 평소 일상과 업무에서는 필요치 않았을지 몰라도, 적어도 그 순간에는 반드시 필요했던 주도적, 창의적, 열정적, 헌신적 행동이었고, 그는 필요한 순간에 너무나 완벽히 발현했다. 그리고 그 행동을 용접공이 실천했던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누군가의 칭찬을 기대해서도, 돈을 더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만들어내는 제품이 잘못 만들어지면 안 된다는 마음에, 잘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 다시 말해 일의 즐거움과 의미 때문에 시도한 행동이었다
일의 즐거움과 의미가 조직의 격차를 만든다 

필자는 이제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정말로, 루틴하고 반복적인 일을 하는 이들에게는 어떠한 주도성이나 창의성도 필요하지 않다고 믿는가? 정말로 일의 즐거움이나 의미가 이들에게는 물질적인 이익이나 보상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필자는 절대 아니라고 믿는다. 일의 즐거움과 의미를 평소 추구하고, 느끼려 하는 구성원이 모인 조직과 그렇지 않은 조직은 앞의 일화와 같은 상황들이 나타날 때마다 양자 간에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를 만들어 낼 것이 분명하다고 믿는다. 비단 지식산업뿐만 아니라, 단순 반복적이라고 믿고 받아들여지는 생산제조업조차 그러하다. 루틴하고 반복적인 일이라 할지라도 그 일을 대하는 조직의 구성원들이 일하는 이유와 목적, 조직이 하는 일에 대해 어떠한 믿음(집단가정)을 공유하느냐가 그들의 보편적인 업무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정말 중요한 순간에서의 퍼포먼스를 결정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앞서 필자가 들었던 그러한 말들은 아쉽게도 독자들이 상상한 그런 기업과 구성원들만 했던 말이 아니었다. 사무직, 영업직 심지어 R&D 조직에 속한 연구원들에게서도 들었던 얘기였다. 필자는 이러한 말을 했던 이들을 비판하거나 잘못됐다고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사고와 행동방식이 자연스럽게 발현되게 한 경영방식과 조직문화가 앞으로는 물론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더 이상 기업의 경쟁력을 담보하지 못함을 얘기하고자 함이다

이제는 정말로 주어진 일이 어떠한 일이건, 조직의 사업이 무엇이건 간에, 그 안에서 일하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일에서 즐거움과 의미를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조직문화,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경영의 방식이 기업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만들어 냄을 알리고자 한다. 그것이 매일 매일의 가시적인 격차를 만들어내지는 못할 수 있으나, 중요한 순간에, 또는 시나브로 유의미한 격차를 만들어낼 것임을 믿는다.


 

본 기사는 HR Insight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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