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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매거진

우리 조직에도 스타트업 문화가 가능할까

2020-09-08

 

 

김성남 HR컨설턴트 / 《미래조직 4.0》 저자

 

글로벌 컨설팅 기업 PWC의 금년 5월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글로벌 100대 기업 가운데 2020 4월 기준 여전히 남아 있는 기업은 52개에 지나지 않는다. 조사의 기준점이 된 2009년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촉발돼 세계적으로 확산된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수습이 한창이었던 시점이었다. 글로벌 대기업도 지속적 성장 동력 확보에 실패하면 도태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수치다.

한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여 년 동안 많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기업들은 성장을 거듭해 세계적인 규모로 커졌다. CB인사이트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금 세계에는 436개의 유니콘 기업이 있다. 10억 달러 이상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은 비상장 기업을 의미하는 유니콘은 한 국가의 새로운 경제와 산업의 활력을 반영하는 지표로 여겨진다. 미국과 중국이 전체의 74%를 차지하고, 한국은 11개로 전체 6위에 이름을 올렸다. 2014 5월 쿠팡이 1호 유니콘이 된 뒤, 크래프톤, 비바리퍼블리카, 우아한형제들, 야놀자, 위메프, 지피클럽, 무신사 등이 유니콘 지위를 갖게 됐다.


전통 기업에서 스타트업 문화가 어려운 이유
이런 변화 속에서 대기업을 포함한 많은 전통 산업 기업들은 성공한 스타트업 기업의 일하는 방식과 기업 문화를 배우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작년 10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은 'SK ICT 테크 서밋'에 참가해 "너무 빠른 기술 발전이 이제는 위협으로까지 느껴진다", 융합 인재를 키우는 것과 '딥 체인지'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수년 전부터 많은 전통 산업 기업들이 '린 스타트업' 방식을 대기업 사업 및 구조에 맞게 변용해 적용하려고 시도 중이다. 특히 2019년에는 산업을 가리지 않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애자일 혁신'이 기업 세계를 휘몰아쳤다.

이런 시도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통 대기업에서 기대한 수준의 가시적인 변화가 나타난다는 징조는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일차적인 이유는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근본적인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빠른 성장을 추구하는 기업이다. 창업팀의 열정과 아이디어를 빼면 돈과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일을 할 사람이 무엇보다 없다.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서 투자를 받고 시장에서 인정을 받는데 전력투구를 할 뿐,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을 만들 여유가 없다. 사람에 의한 경영이 될 수밖에 없고, 체계를 만들어 나가더라도 최대한 단순 명료함을 추구한다.

반면, 대기업은 위험관리를 하면서 안정적 성장을 추구한다. , 자원, 경영 인프라가 풍부하고 시스템에 의한 경영을 추구한다. HR 시스템도 상당히 복잡하며, 다양한 구성원들의 니즈를 충족하기 위한 HR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은 채용, 보상, 교육, 노무 등 자기 전문 분야에 특화해서 정교하고 치밀한 제도를 설계하고 운영한다. 이런 제도와 프로그램들은 거꾸로 조직의 활력을 제한하고 사업가 정신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조직과 리더십 개발을 통해 몰입도와 생산성을 높이고, 혁신적인 문화를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비대한 조직 안에서 그런 변화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국내 스타트업 회사들은 일반 기업 대비 퇴사율이 4배나 높다는 조사가 있다. 스타트업은 몇 년 안에 70~80% 망하는 회사들이고, 대기업은 망하지 않는 것을 지상 목표로 하는데 스타트업의 방식을 무차별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잘 될 리가 없다.

전통 기업들이 직원 10명 안팎의 초기 스타트업을 벤치마킹하지는 않는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처럼 비교적 최근(10~20년 전후) 스타트업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성공한 대기업이 된 혁신기업들에 주목한다. 문제는 이런 혁신 기업들의 ' 상황'만 중시하고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간단하게만 보고 넘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국내 주요 그룹사들은 이미 10년 전부터 구글에 대한 벤치마킹을 했다. 한 그룹사의 경우, 주요 계열사 CEO들이 벤치마킹 내용을 보고 받고 "우리는 구글을 따라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구글은 스타트업으로서의 독특한 운영 방식과 기업 문화를 먼저 형성한 후 조직의 크기를 키웠고, 그 과정에서 그런 DNA가 바뀌지 않도록 하는 노하우를 쌓았지만, 우리 대기업들은 이미 대기업 DNA로 바뀐 지 오래 됐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문화를 갖기 위한 변화관리 방법 
대기업이 절대 바뀔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맥킨지의 시니어 파트너 콜린 프라이스Collin Price는 높은 성과를 지속적으로 내는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잘 하는 네 가지 중의 하나가 끊임없이 조직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변화를 위해서는 대기업에 맞는 변화 관리 방법이 필요하다.

첫째, 기존 기업 안에 스타트업처럼 일하는 팀과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조직 전체의 분위기를 좀 더 개방적으로 만들고 혁신 캠페인을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사람들은 지금 당장 스타트업에 가더라도 뭔가 해낼 수 있을 정도의 사업가 정신과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내부에 없다면 새로 뽑거나 아니면 작은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것이 낫다. 이런 사람들은 실제로 스타트업들이 하는 방식을 따라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고객을 창출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 일은 다른 일을 하면서 20% 정도의 시간을 사이드 프로젝트로 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100% 몰입을 해도 될까 말까 한 일이기 때문이다.

둘째, 큰 목표에 대해 회사와 합의한 후에 어떤 방식으로 달성하던지 간에 방해를 하지 말아야 한다. 너무 많은 중간보고와 계획서 제출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가능하다면 회사 내 다양한 제도, 규정으로부터 예외를 적용해 주는 것이 좋다. 권한을 충분히 주지 않은 채로 결과만 요구하면 구성원들은 자발적으로 일하지 않게 된다. 프로젝트가 진행이 안 된다. 성과관리는 필요하지만, 1년에 한 번 목표 수립하고 연말에 한 번 고과해서 기본급과 성과급에 반영하는 사이클은 스타트업 방식에 전혀 맞지 않는다. 그렇다고 전체 대기업을 스타트업 조직의 속도에 맞추는 것 역시 무리이기는 마찬가지다.

셋째, 수평적인 조직체계가 필요하다. 스타트업은 위계 조직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리더는 필요하지만, 리더의 개념과 역할은 전통적인 조직에서의 그것과는 완전히 달라야 한다. 일을 지시하고 챙기는 관리자가 아니라, 영감과 도움을 주면서 동료처럼 함께 일하는 현장 리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런 조직은 기존의 사일로 조직 안에서 잔뼈가 굵은 관리자가 필요 없다. 따라서 팀 구성원을 배치하는 것도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갖다 꽂는 것이 아니라 그 팀의 구성원들이 대화해 보고 판단해서 뽑아야 한다. 내부에 없다면 외부 사람을 뽑아야 한다. 대기업은 핵심인재가 10% 정도만 있어도 되지만, 수평적인 조직은 소수라도 일당백의 역량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결과를 낼 수 있다.

넷째, 제도는 정교함보다 단순함을 추구한다. 경영은 복잡함 속에서 끊임없이 의사결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복잡도에 대응하는 데는 2가지 방향이 있다. 대기업은 문제의 복잡도를 능가하는 정교한 솔루션을 찾는다. 스타트업은 복잡한 것을 단순화하여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스타트업 조직의 인력 활용은 조직의 룰과 시스템을 정교하게 만들어서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잠재 역량을 극대화하도록 하는 것이다. 유능한 직원이 자발적으로 일하도록 하려면 제도가 복잡하면 안 된다. 제도가 복잡하면 그것을 지키거나 우회하기 위해 에너지를 많이 쓰기 때문이다.

다섯째, 구성원의 성장 마인드를 강화한다. 대기업은 혁신도 탑다운 방식으로 추진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 과정에서 모든 혁신은 '개인' 수준에서의 새로운 시도와 실패로부터 학습이 수평적 협업과 만날 때 이뤄진다는 것을 간과한다. 경영진이 압박하고, 돈과 자원을 투자하고, 기술이나 도구를 도입해서 혁신이 되는 것이라면 이 세상 모든 대기업들은 불멸의 기업이 됐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대기업 계열사들도 평균 15년 이상 생존하지 못하는 것이 오늘의 경영 현실이다. 오히려 구성원들의 성장 마인드를 자극함으로써 혁신에 성공한 것이 2014년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의 사례다

여섯째, 계획보다 실행이다. 전통기업의 업무 방식은 예측과 분석을 바탕으로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틀림없다고 판단이 될 때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이런 접근은 큰 기업이 실패를 줄이기 위한 관행이지만, 변화무쌍한 21세기 경영환경에서는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고 특히 조직 변화에 있어서는 저항을 극복하기 어렵다. '이것이 될까, 안 될까?' 답도 없는 고민을 너무 오래 붙들고 있기보다는 어느 정도 타당한 계획을 세워서 빨리 실행에 옮기고 조직의 반응에 따라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훨씬 낫다. 국내에서 드물게 애자일 조직 전환에 성공한 것으로 인정받는 오렌지라이프의 경우에도 CEO가 확신이 섰을 때 리더십 팀을 직접 설득하고 애자일 전환 데드라인을 정해서 일사불란하게 추진한 결과 8개월 만에 성공한 케이스다.

직급을 없애고, '' 또는 영어 호칭을 쓰고, 사무실 개인 좌석을 없애고, 평가를 일 년에 한 번에서 두 번으로 바꾸는 등의 노력은 적절한 변화관리 맥락에서는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 회사가 성공한 스타트업 기업 같은 문화로 바뀌게 해주지는 않는다. 조직의 관행과 습관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수십 년 동안 복잡한 이유가 있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다른 요인들은 그대로 두고 몇 가지만 바꾼다고 조직이 달라지지 않는다. 좀 더 혁신적으로 변화하고 싶은 대기업은 잘 나가는 스타트업 회사를 벤치마킹을 하는데 시간을 쓰기보다는 자기 조직의 현재 모습이 왜 그렇게 됐는지에 대해 좀 더 연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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