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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매거진

HR의 경험이 독이 아닌 자산이 되려면

2020-05-15

 


요즘처럼 일상이 중요하게 느껴지는 때는 없는 듯하다. 별것 아니었던 일들이 이처럼 소중했던 것인가를 새삼 느끼게 한다.

루틴Routine이란 말이 있다. 사전을 찾아보니 '규칙적으로 하는 일의 통상적인 순서와 방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말은 운동선수들의 동작에서 흔히 듣는다. 야구 경기에서 타석에 들어온 타자가 방망이를 한번 휘두르고 바닥을 한두 번 치는 동작, 프로골퍼가 티샷을 하기 전에 연습스윙을 하고 공이 날아갈 방향을 가늠해 보는 동작. 이런 동작을 할 때 해설가들이 선수들이 루틴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루틴이 중요하다는 말도 덧붙인다. 긴장을 풀고 평소대로 하던 대로 하면 된다고.

인사에서의 루틴과 전문가로의 성장
루틴은 '일상성'이라는 말로 바꿀 수 있다. 우리가 익숙한 일들을 익숙하게 처리하는 것을 '루틴하게 한다'고 말한다.

인사의 루틴한 업무를 생각해 보자. 신입사원 채용계획은 준비기간을 걸쳐 대개 9월 중순이나 말부터 시작한다. 본격적인 채용은 여러 차례 면접을 거쳐 1월에 시작하는 신입사원 교육으로 마무리 짓는다. 그리고 현업 배치가 이루어지고 OJT, 교육을 통해 본격적인 회사의 구성원으로 성장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업무평가를 통해 급여가 결정되고 그렇게 연차가 쌓이면서 승진도 일어나고 본인도 회사원으로 내공을 쌓게 된다.

그러니까 채용-육성-평가-보상의 사이클을 거치면서 조직 구성원은 성장하게 되고 구성원을 둘러싼 환경을 복리후생이라 부를 수 있고 사원들의 의견을 접하고 대면하는 과정에서 노동조합과 사원대표들과의 관계를 이루어 가게 된다. 이것이 거칠게 보면 인사의 루틴이라고 하겠다.

각각의 과정 하나하나가 회사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펼쳐지고 그 심도 또한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 어떤 회사는 노사문제가 중요하게 등장할 것이고, 어떤 회사는 채용이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질 것이며, 또 다른 회사는 평가와 보상이 이슈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경험을 쌓은 담당자들은 같은 업무를 수차례, 수년간 반복하면서 이른바 '전문가'라고 불리게 된다.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채용을 5년쯤 한 인사팀원은 채용전문가가 되고, 신입 때부터 노사협상으로 업무를 한 사람은 과장쯤 되면 노사업무 전문가가 된다. 평가보상으로 여기저기 찾아다니고 자문을 구하던 팀원은 차장이 되면서 다른 회사 사람들이 자기를 찾아 묻고 있는 현실을 만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면으로는 쑥스럽기도 한 일이다. '내가 그렇게 많이 아는 것은 아닌데...'라고 하지만 막상 업무에 임하면 누구보다 능숙하게 일을 처리해 나간다. 그러면서 은근히 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업무에 익숙한 '준전문가'급은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루틴이 가져온 생각의 '닫힘'
그렇게 반복되는 일과가 쌓이고 보태지면서 나름대로 본인의 업무를 한 문장으로 정리되는 특징을 지니게 된다. 이를테면 이렇다. 면접장에 들어가기 전에 후배들이 면접서류와 요즘 필요한 면접 스킬을 알려줘도 '괜찮아. 내가 지금 면접이 몇 년째인데. 내가 척보면 괜찮은 친구인지 아닌지 알아'라는 식이다. 인사평가 세션에서 A B라는 사람을 놓고 누구를 해외지사에 파견해야 하는지 결정할 때 '사람 다 똑같아, 거기서 거기야. 본인이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라고 툭하니 말하기도 한다. 후배가 새로운 교육훈련 방식을 상의하면 '야야, 그거 내가 해봐서 아는데 그렇게 하면 안 돼'라고 한마디로 후배 말을 가로막기도 한다. 서서히 주니어 시절 별로 보고 싶지 않았던 선배들의 모습을 은연중에 나타내 보이기 시작한다.

예전에 잘 알던 동료가 있었다. 그와 나는 어려움을 함께 했다. IMF의 어려움을 같이 겪었고, 2000년대 초반 닷컴의 열풍이 한창일 때 일 잘하던 젊은 사원들이 우루루 퇴사하던 때, 그들을 붙들고 퇴사를 말리는 면담도 같이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의 모습이 달라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의 젊은 세대를 젊었던 시절의 자기로 보기 시작했다. '나라면 그렇게 안했을 거다, 너는 왜 그렇게 생각하냐, 그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맞는 말이고 합리적인 태도이지만 그건 그와 필자에게만 그런 것이고 젊은 세대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 그는 답답해했다. 왜 젊은 사원들이 저렇게 생각하는 것인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때로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결국 그는 회사를 떠났다. 자신의 충고와 조언이 그저 잔소리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을 참을 수 없었다

필자는 '앞으로는 재택근무가 일상적인 일이 될 것이다'라는 기사를 보고 그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과연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인가, 가능할 것인가. 가능하게 하려면 회사의 시스템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이런 것들에 대해 얘기했다. 나는 그러려면 무엇보다 정직해야 한다고 했고, 그는 상사들의 마음가짐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다가 '에이, 우리 때는 안 되겠구나'라고 결론 냈다.

우리는 몰랐다. 우리가 경험이라 생각했던 것은 업무의 반복에서 오는 숙달이었지 밀려오는 일을 처리하면서 생각하고 고민하고 노력했던 진정한 경험은 아니었음을. 그래서 우리의 숙달이 전혀 다른 환경을 만났을 때 당황했고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겸허하게 마음을 열지 못했고 그렇다고 함부로 마음을 보여주기엔 실력이 너무도 부족했다.

경험이 진정한 힘을 발휘하는 순간
경험은 쉽게 쌓이지 않는다. 단순한 반복을 경험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 경험은 다양한 일들이 구체적으로 벌어졌을 때, 스스로 고민과 생각으로 그 일을 진지하게 대할 때 쌓이는 것이다. 그렇게 쌓인 고민들이 모였을 때 그것이 경험으로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그 힘은 미래에 닥칠 많은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동력이 된다. 조만간 예전 동료를 만날 것이다. 그때 물어보겠다. 너는 어떤 경험을 쌓았냐고. 그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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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훈 원장은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와 서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 코오롱그룹에 입사 후 인사 및 조직개발 부문으로 외길을 걸어온 HR전문가이다. 현재는 인재개발센터 원장과 오운문화재단 대표를 겸임하며 인재들을 육성해나가고 있다.


백기훈 코오롱인더스트리(인재개발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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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HR Insight 2020. 04월호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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